내 작품방/오늘의 생각

간병 일기

은빛강 2011. 3. 27. 19:13

간병 일기

 

심히 마음이 우울했던 간밤,

늘 양 쪽 팔에 강아지들을 안고 잠이 들곤 했는데 간밤에는 강아지들을 밀쳐냈다.

삐치고 주눅이 든 강아지들은 그래도 아주 조금 내 몸에서 떨어져 잠이 들었다.

그냥 가슴이 아프고 호흡을 하기에 곤란했다.

어제 수신 되어 온 어느 선생님의 전화를 받으며 급히 메모지를 찾느라 책꽂이에서 메모용 노트를 끄집어냈다.

이것, 저것 메모를 남기고 늦은 오후 오래된 향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매월 모임이 있는 모양이다. 해서 나를 데리러 오겠단다. 그러라고 대답을 하고 노트북 앞에 펼쳐진 메모된 작은 스케치북이

눈에 들어 왔다.

오래 되어 보이진 않은 기록용 스케치 북이었다.

몇 장을 넘기자 가슴이 조여 왔다.

나는 무엇이든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그 스케치북에는 2009년 10월11일 부터 아버지를 병원에서 지켜보며 그날 그날

아버지의 상태를 간략하고 세밀하게 기록을 해 두었다.

기록 정황을 보았을 때, 병원측이 아주 무모한 시술이 눈에 띄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이럴수 도 저럴 수 도 없었던 상황이었고 그 한 달 동안 이것, 저것 판단하느라 내 정신이 정상이 아닌 게 분명했다.

골절에 당뇨에 패렴에 이겨 낼 수 없는 병들만 안고 입원을 했다.

그 이전 '척추디스크 수술'과 '심장 이식수술'과 '림프 암'으로 입원 치료까지 한 아버지이다.

그리고 다시 골절상을 입었을 무렵엔 여동생들이 간병을 했다.

당시 아버지는 뇌동맥이 막혀서 수술에 애로가 있었다. 동생들이 전화로 황급히 상황을 물어 와서 수술은 하지 말고 ,

물리치료 시술을 통해서 가급적이면 집에서 치료를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랬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간병인의 소홀한 행동으로 감기는 급성패렴으로 전위되고 신장과 심장까지 이상이 왔다.

해서 친척이 계시는 지방 대학 병원으로 갔으나 토요일어서 응급실에서 대기만 하고 있었다고 했다.

당시 전화를 받고 내려 갔을때는 10,11,일요일 늦은 오후였다.

나는 응급실이 너무나 싫다.

무슨 가족들이 문제만 생기면 온통 응급실 행이다. 혼란스런 장소에서 나는 혼절까지 했던 이력이 있다.

간호사의 부주의로 시아버님의 동맥에 꽂은 링거선이 빠져 혈액이 100ml 는 족히 시트 위로 빠져 나가버렸다.

고요한 새벽에 간호사를 찾느라 온 병동을 휘젓고 의사를 호출해서 급 처치를 하고나니 그냥 눈앞이 캄캄 했다.

자주 눈앞이 캄캄 할 때는 무엇을 잡고 가만히 앉으면 쇼크는 가라앉는다. 헌데 그 당시는 너무 위급한 상황인지라

무엇을 잡고 어찌 할 여유가 없었다. 그냥 뒤통수가 깨져나가는 아픔뿐이었다.

 

아버지가 계시는 응급실에(10월11일) 도착하자 또 울렁증이 생기기 시작했으나 너무 화가 나서 주변에 널린 흰 가운 의 인간 하나쯤 멱살을 잡고  가만두지 않으리라 했다.

얼굴이 노랗게 된 여자가 항변을 하니 얼른 나온 답은 그랬다.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죽어서 나와야 들어갈게 아니냐고......,(중환자실에 자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상황이 다급함을 그녀는 그런식으로 알려주었다.

'그럼, 내가 대신 죽어 줄 테니 지금 당장 옮겨놓으라'고 마른입을 최대한의 힘을 다해 다그쳤다.

눈앞이 컴컴해져 왔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가운 앞자락을 쥐고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후 아버지는 중환자 집중치료실로 옮겨졌다. (10월12일 am;4시)

사실 병동에 들어가서 병원 직원가운데 친인척을 들먹인다는 게 참 치사했다. 해서 입 다물고 있었을 뿐인데,

그녀는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짜증이다.

이러한 경향들 때문에 가족들은 항상 나를 최전선에 배치를 해 둔다.

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몇 번의 위급한 상황을 사실 모면을 했었다.

그랬던 내가 메모지를 보니 기가 막혔다.  

 

혈소판이 묽어지고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입으로 주입했던 호흡기를 균이 침투 할 것 같으니 목을 절개하여 호흡기를 시술하는 것이다.

메모에는 아버지가 두 번째 의식이 돌아왔고 그렇게 이틀을 넘겼다. 그래서인지 의사들은 호흡기 시술을 몇 번이고 요망을 했다.

11월 6일에 결국 시술을 했고, 계속 출혈이 되었다.

주치의는"입안에서 출혈되는 것은 인공호흡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경향으로 나올 수 있다. 그리고 혈소판이 적기 때문에 출혈이 된다. 그리고 분명 동의서를 받아 놓지 않았느냐?"

또 머리가 핑 돌고 있었다.

"당뇨 합병증을 예상해서 동의 한 것을 거부하지 않았느냐" 사실 동의서를 시술전에 찢은 것으로 알고 있다.

친척분도 "인공호흡기는 2주가 지나면 감염 위험이 더 크므로 지금 목을 통한 시술이 안전하니 염려하지 말라. 지금이 오히려 안전하다."

며 안정을 시켰다.

그분도 처음(10,12일) 회진하고 “아버지께서 아마 오늘이나 내일 쯤, 고비이니 준비를 해라,”고 했던 분인데 무슨 절개시술을 한다는 것인지......,

나는 주치의 대답이 영 신통찮았다.

해서 시술한 곳을 지혈[레이저로 지혈]을 하고 봉합하라고 했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어디를 갔단다.

종합병원에 이비인후과 의사가 그 사람 한분이냐고 다그쳤다. 결국 타 의사가 처치를 했다.[11,7, 12:30분]

수혈을 하고 모든 것을 동원해도 이미 늦었었다.

11월6일 금요일 계산동성당 신부님을 모셔와 종부성사를 드렸다. 오후 6시에......,

11월 7일 12:30분에 제거하고 8일에는 상태가 너무 나빴다. 남동생에게 아버지의 깨끗한 옷을 가져 오라고 했다.

8일 마지막 입혀 드릴 세상 옷을 가져오고 가족들이 모였다.

9일 정신 나간 주치의가 신장 투석기를 필요에 따라 돌리던 것이니 계속 돌려야 한다며, 지금 생각하니 투석기를 가동을 시켰었다.

환자 면회 시간에 들어 가보니 아버지의 팔들이 안쪽으로 뒤틀려 거의 뒤집어진 상태였다.

첨에 투석기를 돌릴 때만 해도 붓기가 많이 내렸지만 8,9일에는 오히려 더 부어 있었다. 눈가는 부어 오른 물기로 눈이 붙어 있었고 눈 주변으로 물기가 범벅이었다. 물티슈로 닦아내도 소용이 없었다.

11,8일 -주치의와 친척아저씨는 약 2~3일 남았으니 또 마음이 아니라 진짜 준비하라고 둘은 같은 내용을 따로 알려주었다.

 

환자에게 온갖 의료 시술을 한답시고 고통을 주었는데 뭣땜에 투석기를 고집하는가 했더니 중환자실 1일 비용이 91만원인데

투석기를 돌리면 숫자는 더 올라 간다.

아버지의 생명에 관해서 신경이 급기야 나 역시 제정신이 아니어서 동의서를 찢어 놓고도 시술을 해버렸는데 더 이상 그들 놀음이 싫었다.

아버지는 이미 눈동자가 풀어지고 곱게 보내 드릴 일만 남아 있었다.

내 기록에는 '신장투석기를 중지요청'에 주치의가 10일에 5~6회를 나를 찾아서 다녀갔다.

남동생에게 장지와 남은 일을 준비시키고 완강하게 투석기를 정지시키라고 했다.

 

그래도 혹시해서, 부 주치의와 상담을 했다.

"투석기를 돌리면 아버지가 회복 비슷하게라도 되는건지?"

"이미 모든 장기가 제 기능을 못하므로 회복은 가능성이 없다." 무척 순수한 의사였다.

"그런데 왜 투석기를 극구 돌리려 하는건지요?"

"환자 가운데 그래도 제일 오래 버텨 왔으니 마지막까지 돌려 보아야 합니다. 꼭 제 뜻은 아니지만요."

"00교수님 뜻인가요?" "예!"

해서 11,10일 오후에 투석 중지를 요청 했고 그 주치의는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실, 자식된 도리로 뭐든 못 할게 있겠는가, 하지만 떠나셔야 할 아버지께 육신적 고통을 안겨드린다는게 힘들었고,

또, 중지를 시키던 내 마음도 너무 괴롭고 아팠다.

 

오후에 투석중지를 하자  이미 아버지는 모든 기관이 제 역활을 못한 채 그 기계에서 꾸준히 고통을 받고 있었다.

물론 인공호흡기는 식구들이 올때 까지 떼지 않아서 기계 저 혼자 놀고 있었다.

아무런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오후 7시에 지방 앰블런스에 올라 아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 호흡기 시술만 하지 않았어도 과다한 출혈을 하지 않고 그나마 가족들과 조용하게 별리를 했을 텐데, 너무 미안하다.

물론, 어느 인간이든 생명이 끝나면 옷을 벗듯이 떠나는 것이지만 내 아버지이고 보니, 현실을 인지하기엔  나에겐 버겁고

무척 힘겨운 일들이었으며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뿐이다.

친척들이야, 하는 말이라고 이제 가셔도 되는데 자꾸만 내가 지연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무엇하는 영혼인가?

도대체 누구이길래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보내게 되었는가?

면목없이 와서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아버지에게 나는 무슨 얼굴로 마주 할까?

매일 그렇게 고통 속에서  내 영혼에게 되묻곤 한다. 

가족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평생 그러 할 것이다.

어둠이 내리는 허공 속에 지우개 하나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릴렉션하게 쏘 다닌다.

지금것 아버지를 위해 보낸 시간이 허무하게 온 공간을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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