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방/오늘의 생각

해일

은빛강 2011. 3. 13. 17:10

해일

박 찬 현

 

 

 

 

하늘이 너무 해맑다.

 

순식간에 일본 이곳, 저곳을 헤집으며 삶의 보금자리와 생명을 휩쓸고 간 지구의 모습은 어디가고

 

허공은 너무 조용하다.

 

 

79년인지 [영화-허리케인]을 보고 오래 동안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 새롭다.

 

미국통치하에 있던 서사모아제도에서 일어난 허리케인에 의한 해일은 작은 마을 하나를 죽음으로 덮쳤다.

 

하데스의 흔적만 남은 곳에 젊은 연인만이 살아 남은 그 영화를 가끔 생각의 공간에 그려보곤 했다.

 

이상하게 청춘에 읽은 책이나 영화는 아주 오래, 그리고 세밀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는 기억 세포들은 내가 생각해도 새롭다.

 

 

 

 

현재진행형인  이번 사례는 참으로 끔찍했다.

 

첫 번째 마을에 덮친 해일이 바다에 있던 배들을 성큼성큼 밀고 오면서 훑어 온 집들과 그리고 생명체들,

 

그 장면 가운데 눈에 띈 것은 자동차 한 대가 전속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그 지저분한 바다는 그 자동차를 삼켰다.

 

"여기가 누구의 땅이라고 생각하느냐?"

 

"알고자 하는 자는 내 앞으로 나와라!"

 

그렇게 호통을 치며 인간의 삶터를 적셨다.

 

 

 

나는 늘 소설은 허구의 픽션이고 영화도 그렇다는 지론이었다.

 

그러나 지나간 날 일어난 일은 허구도 영화도 아니었다.

 

그 안에는 정의로운 사람, 마음 따스한 이 도 있을 것이다.

단지 소설만 같았던 짜임새의 생생한 현실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심통 맞은 이도 더러는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곧잘 ‘자가당착’론에 의거해 '지은대로 받는다.'라고 정의를 곧잘 내린다.

 

특히 일본의 과거 역사를 되 짚어보면 십중팔구 나올 법한 답안지 같은 말, 말, 들,

 

 

 

 

아주 오래 전에 국가에서는 [서대문 형무소]를 허물고 그곳에 역사적인 박물관을 조성도 할 겸 공원을 개장을 하였을 때,

 

관내 초,중, 학생들의 사생실기대회가 열렸었다. 그것이 제1회였다.

 

나와 동료 둘은 실기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그 자리에 갔었다.

 

사생대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작품을 완성 할 동안 우리는 형무소 직원의 인도를 받으며 그 안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모두 정리가 된 채 개장을 해 놓았지만 그때는 아직 공사 중인 관계로 비공개 장소가 의외로 많았다.

 

아무튼 일행은 역사의 아픔이 살아 숨 쉬는 형무소를 둘러보게 되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형장을 들리게 되었다.

 

사형장 앞에는 미류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참 특이하게도 그 미류 나무는 나무 밑 둥이 여러 갈퀴처럼 갈라져 있었다.

 

집행형을 받은 사형수가 그곳 사형장 앞에 도달하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 미류나무 갈퀴를 잡고 몸부림을 친다고 했다.

 

사형장엘 들어가지 않으려는 마지막 행위였다고 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하루에도 몇 건씩 사형을 집행을 하게 되면, 그 미류 나무에 달린 잎이 시들어 간다고 하였다.

 

간수의 말대로 우리는 그 미류 나무 밑 둥을 만져보니 충분히 부여잡고 안간힘을 쓸 만큼의 갈퀴가 몇 갈래 툭툭 나누어 져 있었다.

 

말 못하는 생명도 그렇게 절명의위기 앞에 놓인 절규를 듣느라 생나무가 말라 비틀어져 가는데

 

하물며 지켜보는 간수들의 입장이야 오죽했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언제 누구의 차례인지 모르게 일정이 배정되므로 늘 마음이 조인다고 했다.

 

 

 

사형장 안을 들어갔을 때, 사형수가 앉은 뒤로 돌아 가면 지하 바닥으로 열려지는 사형수 의자 밑바닥 문을 열어젖히는 레바가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는 컴컴하였다. 옆으로 난 조그마한 문으로 내려가서 사형수가 절명했는지 여부를 안다고 했다. 해서 그들은 그리로 내려 가 보았다. 나는 못 내려갔다. 왜냐면 열려진 아래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 왔다. 더러 초상집 봉사를 나가보면 맡게 되는 주검의 냄새가 그곳에서 났다. 지금은 장례식장이 현대양식으로 아주 편하게 되어서 봉사하기에도 편하다. 그러나 몇 십 년 전만해도 주검을 집에 모셔 놓고 장례를 치루 노라면 입관예절에서 많이들 맡게 되는 주검의 내음이다. 나는 그 냄새가 너무 역해서 밖으로 나와 게워냈다.

 

 

 

 

그 역사관에서 나는 그렇게 생명의 존엄을 느끼고 와서 늘 마음 한쪽에 자리 해 놓은 것은 절대 누구의 죄이든 인간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 고 생각한다. 특히 목숨에 관해서는 더더욱,

 

뉴스에서 한곳에서 3,4백의 주검들을 발견했다는 보도를 접할 때 너무나 죄송했다.

 

나는 오랜 기간 미움 때문에 이웃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았다.

 

자꾸만 [영화-밀양]만이 되새겨 질 뿐 사이길 로 빠지곤 했다.

 

내 이웃을 위한 기도는, 곧 세상을 휘돌고 와서 나의 양식이 되는 것이며 나의 가족의 거름이 되는 역할인 데, 한동안 아니 1년간 그렇게 안일하게 냉정했었다. 물론, 사람들은 그러한 기도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지만, 십시일반으로 많은 이들이 이웃을 위해 기도를 한다면 하느님께 미움을 산 인간의 비인간적 인 소행도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이다.

 

 

사회에 나와서 한 봉사도 종국은 인간들의 비 정당 행위들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저러한 인간이 존재하는데 하늘은 무심한가, 라며 오히려 세상이 뒤집혀야 한다고 생각한 나이다.

 

그러나 정작 그러한 장면을 목격을 하고보니 내 생각은 아주 바보스런 생각이었다.

 

생명은 소중하다.

 

삶도 소중하다.

 

그것이 어떠한 위인의 것이건,

 

그리고 내가 저주하고 미워해야 할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판단은 내 몫이 아니란 건만 분명한 일이었다.

 

단지, 그저 예전처럼 해왔듯이 그런 나로 돌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물론, 소원했던 공간이란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인정하면서......,

 

 

 

화학의 기호 중 가장 작은 개체는 원자이다.

 

그러면 우주에 가장 작은 것은 먼지이다.

 

나는 먼지와 같은 존재이다. 라는 것,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조차 나는 들을 수 없다.

 

참으로 미미한 존재이면서 아주 특별한 이기심의 주역인양 살았다.

 

집안 청소를 하듯 내 마음 속에 해일을 일으켰다.

 

일 년 동안 먼지를 침묵으로 덮고 있었던 나를 깨우듯이......,

 

 

 

 

오늘 나는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 잠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