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양선규-문학개론

인문학 스프-패러디

은빛강 2012. 7. 10. 19:29


인문학 스프-패러디
횡설수설㉚ - 선언문

대선 주자들의 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공들여 작성했을 선언문들도 후보자마다 각양각색입니다. 글쓰기 전문가로서(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올해의 선언문들을 보고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과거처럼 화려한 레토릭(rhetoric)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녁이 있는 삶’에서부터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까지 다 고만고만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습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보통 사람 노태우’,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의 살맛나는 세상(참여 정부)’ 같은 언어의 잔치도 없고, 노랑이나 파랑과 같은 상극적인 색채의 향연도 없습니다. 좋게 보면 그만큼 ‘거짓말’이 줄어든 것이고, 이념적 피아의 경계가 해체되면서 민생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굳이 나쁘게 보자면, 최근 정치권 인사(특히 싱크 탱크에 속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이 그만큼 박약(薄弱)하다는 증좌가 될 것입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심금을 울리는 말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모두 다 배부른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한 나라를 울리는 절박한 스토리텔링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다못해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문안 하나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한 때 소비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은, 온돌 문화에 갑작스레 편입된 얼치기 침대들의 그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온 민초들의 ‘절박함’이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열두시에 만나요 부라보콘’이 상기도 혀끝에서 맴도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시절의 ‘열두시’가 가장 ‘많이 선택되던 만남의 시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계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낮 12시에 오포(午砲)를 쏘거나 사이렌을 울리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요즘 젊은이가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마는 그 열두시의 ‘절박함’이 존재했기 때문에 ‘부라보콘’은 아직도 정겨운 아이스크림입니다(물론 구구콘도 맛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은 머리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일단 공부부터 좀 하겠습니다.

그 똑똑하다는 앺 고어(Gore) 전 부통령이 연설문을 맡기고 수석 대변인으로 삼은 사람이라더니, 이 43세의 젊은 학자는 과연 야무지게 말을 잘했다. 차세대를 이끌 대표적 미래학자로 꼽히는 다니엘 핑크(Pink)는 대화하는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명쾌하고 명랑하고 명석한 문장들을 인터뷰 내내 뿜어냈다.
- 당신이 보기에 지금의 경제 위기는 왜 왔는가?
“아무도 큰 그림을 보지 못했거나, 혹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각만 봤을 뿐, 아무도 조각을 맞출 줄 몰랐거나 외면했다. 감당 못할 주택담보대출이 증권에 얹히고, 전 세계로 뿌려지는 과정에서 모두들 부분 부분에만 집착해 있었다. 그러다가 지탱 불가능해 진 것이다.”
- 조각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이콘셉트(high-concept)를 중시하고 개발해내야 한다.”
- 하이콘셉트란 무엇인가?
“예술과 감성까지 아우른 통섭과 종합의 능력이다.”
- 당신이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A Whole New Mind)’에서 말하는, 텍스트(text:본문 구절)에만 매몰되는 좌뇌(左腦)보다, 콘텍스트(context:맥락)를 감지하는 우뇌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뜻인가?
“정확하다. 당신의 설명이 더 좋네. 내 대답을 그걸로 대체해 달라(웃음). 우리 모두 이 우뇌의 능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이 우뇌 능력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용하지 않은 근육과 같다. 우뇌의 능력, 그러니까 공감하고 디자인하고 스토리텔링하는 것은 인간이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능력이다. 이런 자신감을 갖고 노력하면 누구나 개발할 수 있다. 21세기형 학교 교육은 이런 우뇌 능력을 개발시키는 것이다.”
- 스토리텔링은 왜 중요한가?
“가장 큰 이유는, 이제 우리에게는 팩트(fact:사실)들이 너무나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런 팩트들을 스토리로, 문맥으로 엮어내지 못하면 팩트는 증발된다. 스토리는 영화산업, 게임산업 등 많은 산업의 기초이다. 인간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직장에서 귀가했을 때 배우자가 ‘오늘 어땠어?’하고 물어보면, 컴퓨터를 켜고 파워포인트로 설명하는가? (웃음) 아니다.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저런 일이 있었고, 그 다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스토리를 말한다. 그게 자연스럽다.”
[중략]
그가 말하는 하이콘셉트의 두 번째 조건은 스토리다.
“스토리는 아까도 말했듯 사실들을 엮어 문맥을 만들어내면서 감성적 충격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스토리에서 차별화라든지, 강력한 마케팅이라든지, 비즈니스 리더십 등이 창조된다.
셋째, 조화(symphony)다. 이건 ‘큰 그림으로 생각하기’다. 조각들을 맞춰 결합 시키고, 패턴을 찾는 것이다. 조각을 결합해서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창조해 내는 것이다. 아웃소싱하기 매우 어렵고 자동화하기도 매우 어려우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제 누구나 이렇게 조화의 사고(思考)를 할 줄 아는 전문가를 원한다. 좁고 막힌 사고의 전문가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좁고 막힌 사고의 전문가가 글로벌 경제 위기라는 재앙을 불러일으킨 것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어느 분야에서든 더 넓고 큰 시야를 갖고 더 큰 그림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전문가를 원한다.”
그는 마치 원고를 좔좔 왼 명배우처럼, 막힘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넷째, 공감(empathy)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고 다른 사람의 심장으로 느낄 줄 아는 능력이다. 판매나 디자인 모두에 필요한 능력이다. 이것도 아웃소싱 하거나 자동화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노년층을 위한 디자인이나 제품을 보자. 젊은 디자이너는 일부러 시야가 좁아지는 안경, 민첩성을 떨어뜨리는 장갑을 끼고 체험을 해 본다. 그래야 소비자를 위한 진정한 디자인과 진정한 제품이 나온다.
다섯째 놀이(play)다. 웃음과 유머, 게임, 기쁨을 갖고 있는 인재를 뜻한다. 이런 요소는 이제 필수적이다.”
- 한국 독자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계획을 세우지 마라.”
- 미래학자가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충고하나?
“그렇다. 스무 살에 이걸 하고 그래서 다음에 이걸 하고…, 하는 식의 계획은 내가 볼 때 완전히 난센스다. 완벽한 쓰레기다. 그대로 될 리가 없다. 세상은 복잡하고 너무 빨리 변해서 절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대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라. 그래서 멋진 실수를 해보라. 실수는 자산이다. 대신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멋진 실수를 통해 배워라.” [장원준, 「세계적 미래학자 3인이 전망하는 ‘메가 트렌드’(조선일보, 2009. 4. 4)]

다니엘 핑크(Pink)의 말은 구구절절 옳습니다. 거의 교과서 수준입니다(그저 텍스트에 매몰되기를 즐기는, 교육과정평가원에서 감수하는, 우리나라 교과서는 제외합니다). 말은 쉽지만 어려운 것들입니다. 그가 강조하는 ‘하이콘셉트(high-concept)’는 결국 사람이 그렇게 변해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은 미래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의 대선 출마 선언문들에서 ‘하이콘셉트(high-concept)’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원래 심판은 선수와 경쟁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더 이상의 참견은 행여 ‘경쟁심’으로 비칠까봐 저어됩니다. 그래서 그만두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첨언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승자는 후보자 스스로 하이콘셉트(high-concept)를 가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6.29 선언 이후 국민들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서 꼭 겪어야 할 것은 거의 다 겪었습니다. 보안사령관 출신 물대통령도 뽑아봤고, 남의 두뇌만 빌리는 건강한 멸치 대통령도 뽑아봤고, 죽어도 안 된다던 전라도 대통령도 뽑아봤고, 말 함부로 하는 상고 출신 좌빨 대통령도 뽑아봤고, 자수성가 성공신화에 빛나는 이념(개념) 없는 대통령도 뽑아봤습니다. 그 정도면 이제 못 뽑을 대통령이 없습니다. 그 정도라면 우리 국민들은 이제 누구라도 뽑아낼 것입니다. 누구는 이래서 되고, 누구는 저래서 안 되고 식의 흠집내기 경쟁은 이제는 ‘흘러간 옛노래’와 같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과연 누가 할 수 있는가’입니다. 누가 통일도 앞당기고, 경제도 살리고, 부패구조도 혁파하고, 교육개혁도 할 수 있는가입니다. 그것을 각 후보자들은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가 하이콘셉트(high-concept)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 후보자만이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입니다(다소 분수에 넘치는 말씀이 있었더라도, 다 잘되자고 하는 말이니 부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진은 자갈치 시장 입구의 붕어빵 상점 전경. 이 풀빵 가게는 나름 요지인 시장 입구의 길목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주인 아주머니의 스타일이나 가게 모습은 거의 6.25 시절의 수준이다. 왜 이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