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양선규-문학개론

풍경의 기억㊽ - 옛우물

은빛강 2012. 9. 15. 20:19

 

인문학 스프
풍경의 기억㊽ - 옛우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다시 영화 포스터를 봤습니다. ‘광해’가 ‘광대’로 읽혔습니다. 왕은 광대다, 왕짓과 광대짓은 하등 다를 바 없다, 왕이 뭐 대순가, 누가 더 백성을 사랑하는가, 그것이 진짜 왕을 판단하는 기준 아닌가, 영화는 광대(廣大) 하선이 극적으로 백성을 위하는 선한 군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가 말하는 왕(王)의 서술적 정체성은 ‘백성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영화는 그렇게 말하고 그냥 막을 내립니다. 내리는 막 위에, 1년 뒤에 허균이 역성혁명을 꾀했다는 혐의로 사약을 받았고, 5년 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었다는 설명만 남깁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아직도 이 땅은 역성혁명(易姓革命)을 꿈꾸는 자들의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아직도 우리는 조선시대를 연장해서 살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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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政敵)들은 진짜 왕을 죽이고 가짜 왕의 정체를 밝히려 듭니다. 그것을 알고 미리 몸을 빼낸 진짜 왕이 가짜 왕을 대신해 검증을 받고 역신(逆臣)들을 처단합니다. 그렇게 영화는 대미를 장식합니다. 만약 진짜 역성혁명을 꿈꾸는 세상을 동경(동정, 동조)한다면 그렇게 끝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허균은 진짜를 죽이고 가짜로 왕을 세워 역성혁명을 이루어야 합니다(이 때 중전의 도움은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1년 뒤 실각해야 합니다. 권력을 품에 안고 타락한 자의 말로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로지 왕(王) 하나만 살려야 합니다. 5년 뒤에 일어난 인조반정은 그 사실을 안 정적들의 반격으로 이루어집니다. 어쩔 수 없는 배신자의 출현도 용납해야 합니다. 효(孝) 이데올로기로 현존하는 임금을 끌어내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약하다는 걸 강조해야 합니다. 광대에게 그 오랜 기간 동안 꼼짝 못하고 통치 받았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조선시대의 지배층들의 ‘울며 겨자 먹기 심사’도 상세하게 묘사해야 합니다. 광해군이 67세로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는 것(끝내 그들 죽이지 않았다는 것), 유배지의 상궁들과 포졸들이 그를 ‘영감’으로 호칭하며 놀렸다는 것, 그 모든 것이 그의 ‘광대 전력’ 때문이라는 걸 증거하는 사실(史實)로 내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제목에 지지 않습니다. 그래야 영화가 됩니다. 그래야 우리는 아직도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됩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굳이 역성혁명과 연결되어야 할 하등의, 텍스트 내적인, 필연성은 없었습니다. 진짜 왕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허균의 제안을 하선은 ‘누구를 죽이고 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런 왕이 되는 건 싫다’라고 거절합니다. 왕이 돌아오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런 말을 합니다. 그 부분, 그가 앞에서 한 일과 행동(태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 그 부분 때문에 하선은 그때부터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영화도 이미 ‘영화가 아닙니다.’ 한갓 유치한 만화에 그친다고 할까요? 애꿎은 어린 무수리(궁녀)만 죽입니다. 그게 얼마나 영화를 유치하게 만드는지 모른다면 감독은 진짜 ‘갸루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만화?)를 두고 왜 역성혁명을 들먹이고 있는지 저 자신도 저를 모르겠습니다. 공연한 잡담만 늘어놓았습니다. 영화 <광대, 왕이 된 남자>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볼만한 영화였습니다. 제게는 중전 역의 한효주가 제일 보기 좋았습니다. 옛날 어떤 한 대통령 재임 시절, 시중에 떠돌던 우스갯소리가 하나 생각납니다. 모두 다 어설픈데 딱 한 사람, ‘영부인만 진짜 영부인 같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그랬습니다. 진짜 광해도 가짜 광해도, 허균도 그 나머지 신하들도 다 어설픈데 중전만 진짜 중전 같았습니다. 그 표정 연기가 볼 만했습니다. 마치 오래된 고가에 남아있는 옛우물을 보는 듯했습니다. 이상.

사진은 달성군 화원읍 소재 남평문씨 세거지 수봉정사 내 옛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