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양선규-문학개론

인문학 스프-풍경의 기억㊾ - 땅에 대한 사랑

은빛강 2012. 9. 19. 22:23

인문학 스프
풍경의 기억㊾ - 땅에 대한 사랑

언젠가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던 한 공직 후보자가 ‘땅을 사랑한다’라고 말해서 장안의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국회 청문회에서, 연고 없는 그 먼 곳까지 가서 왜 땅을 샀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게 대답했다는 겁니다. 벼슬은 너무 하고 싶고, 한 짓은 있고, 지기는 싫고, 얼마나 속이 울렁거리고 답답했겠습니까? 청문회 제도가 너무 미웠을 겁니다. 궁여지책으로 어떤 말이라도 ...
내어 놓아야 할 형편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철학적’인(?) 대답을 내어놓았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더 분개했습니다. 그런 터무니없는, 혹은 후안무치한 발상(發想)을 내뱉는 사람은 절대 고위공직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결국 그 분은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한 때 생각을 좀 잘못했습니다’라고 엎드려 빌었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일을 ‘땅을 사랑한다’고, 철학적으로(고압적으로?), 말한 게 오히려 화를 자초한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만약 프랑스 정도였다면(예술과 철학을 사랑한다니까) 저 대답도 먹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땅에 대한 사랑’도 여러 가지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몇 마지기 지어서 온 가족의 생계를 도모하는 가난한 농민의 땅에 대한 사랑, 소작을 두고 땅을 부치는 천석, 만석지기 지주(地主)들의 땅에 대한 사랑, 아파트 생활에 신물이 나서 징징거리는 우리 도회 소시민들의 (집 지을) 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만물을 키워내는 대지의 모신(母神)을 기리는 자연(환경)주의자들의 땅에 대한 사랑, 마지막으로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땅 투기군들의 (돈 불려주는) 땅에 대한 사랑, 그런 여러 가지 ‘땅에 대한 사랑’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당연히, ‘땅에 대한 사랑’의 순도가 가장 높은 쪽은 아마 ‘자연(환경)주의자’들의 것일 겁니다. 그들의 애니미즘은 충분히 하나의 철학입니다. 어쩌면 종교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최창조 교수의 『사랑의 지리학』에 대한 신문 서평에서 그 일단을 조금 엿볼 수가 있습니다.

저자의 문맥을 종합해 보건대, 자생풍수의 요체는 뭐니뭐니해도 사랑이다. 그는 말한다. “(자생풍수는) 한마디로 땅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은 홀로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사랑은 훌륭한 것, 좋은 것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다. …지고지선한 사랑이란 다른 것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 문제가 있는 것,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일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도선풍수에 뿌리를 둔 자생풍수의 목표로 “결함이 있는 땅에 대한 사랑”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그 사랑의 ‘방책’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이른바 비보(裨補)다. 비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머니인 국토의 병통을 고치기 위하여” 도선이 고안해낸 방법이다. 예컨대 “홍수 때 침수 위험이 상존하는 곳, 낭떠러지 밑이나 바로 위여서 산사태의 위험이 있는 땅을 골라 절을 세워 비보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을 가나 만날 수 있는 조산(造山), 조탑(造塔)이라 불리는 돌무더기”도 비보책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저자는 “일부러 결함(이 있는 곳)을 취하여 그를 고치려 함이 도선풍수의 근본”이라면서 ”마치 병든 어머님께 침을 놓아 드리는 듯한” 땅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자생풍수의 핵심이라고 역설한다. 그래서 저자는 자생풍수란 결국 “고침의 지리학”이라는 주장을 편다. (경향신문 문학수 선임기자)

말투나 입성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이 거주하는 ‘땅에 대한 사랑’을 보고서도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사람됨됨이와 살림살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땅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치고, 불효의 자식들치고, 자신이든 후손이든, 잘 되는 일은 아예 없습니다. 자손이 현창(顯彰)한 오래된 마을들을 찾아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가지런한 농토와 울창한 수목, 자리를 제대로 잡은 비보(裨補)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땅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지상의 궁극적인 사랑이라는 걸 가르칩니다(저도 없는 돈이지만, 더 늦기 전에 땅이나 좀 보러 다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