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양선규-문학개론

인문학 스프-싸움의 기술㉜ - 무지한 스승

은빛강 2012. 9. 19. 22:27

인문학 스프
싸움의 기술㉜ - 무지한 스승

선생된 자가 남보다 몰라서야 쓰겠습니까만, 역설의 언사로(비뚤어진 심사로?) ‘선생은 몰라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물론, 그 말에는 몇 가지 함의가 있습니다. 선생된 자들은 ‘(모르니까) 끝없이 배워야 한다’라는 뜻도 있고, ‘(모르니까) 쉽게 가르칠 수 있다’라는 뜻도 있고, ‘(모르니까) 이것저것 끼워 맞춰 스스로 알아나간다’는 뜻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선생은 너무 많이 알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교실이나 강의실, 혹은 연구실에서도 선생이 너무 많이 알고 있으면 학생들과의 지적인 격차가 필요 이상으로 크게 벌어져서(특히 사용 언어의 불통성 측면에서) 교수-학습 효율이 오히려 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혼자 많이 알고, 혼자 깨쳐 있고,...
남 모르는 말만을 애용하는 ‘많이 아는’ 선생은 그저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선생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결국 그런 선생은 학생들을 ‘길 없는 길’로 내몹니다. 제자들을 독학생으로 만듭니다. 그렇게 내모는 게 좋은 ‘선생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저도 한 때는 그런 생각에 젖어있었습니다. 요즘은 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백련자득(百鍊自得)에도 선생은 필요합니다. 선생이 필요 없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일반적인 경우, 선생 쪽에서의 입전수수(入廛垂手)가 필수적입니다(말이 좀 길어지니까 벌써 ‘많이 아는 선생’ 티가 나려고 합니다). 스스로 낮추어야 하고, 남에게 주는 것은 먹기 좋게 스프로 끓여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은 어쨌거나 좀 몰라야 됩니다.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모르는 선생’은 두 사람입니다. 먼저 소개할 사람은 조제프 자코토입니다.

『무지한 스승』은 1818년 루뱅대학 불문학 담당 외국인 강사가 된 조제프 자코토의 지적 모험을 소개하고 그가 이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내고 있는 교훈들을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부르봉 왕가의 복귀와 더불어 망명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자코토는 루뱅에서 프랑스어를 모르는 학생들에게 불문학을 가르쳐야 했다. 그런데 그는 네덜란드어를 할 줄 몰랐다. 요컨대,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혹은 자신이 전달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만 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자코토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번역이 함께 실려 있는 책 한 권을 학생들에게 던져 주고, 번역문의 도움을 얻어서 프랑스어 텍스트를 익히도록 주문했다. 그 실험의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학생들은 얼마 가지 않아 자신들의 생각을 프랑스어로 표현할 줄 알게 됐던 것이다.
자코토는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들을 이끌어낸다.
첫째, 스승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앎은 전수받는 것이 아니라 터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스승의 덕목은 오히려 무지이다. 무지한 스승, 그는 자신이 가르쳐야 할 것에 대해 무지한 스승을 말한다. 그의 스승으로서의 역할은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무지한 자가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그의 지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둘째, 모든 인간들은 지능에 있어서 평등하다. 교육을 지식의 전달로, ‘설명’으로 생각하는 입장은 지능의 불평등이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해서 그 불평등의 간격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설명 자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설명을 듣는 자가 그 설명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 즉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모두가 지능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평등은 목표로서, 달성해야 할 어떤 것으로 제시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이미 전제돼야 하는 것이다.
셋째, 지능들의 동등성은 어떤 것을 배울 때 따라야만 하는 어떤 ‘올바른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무엇을 터득하는 데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방식 및 절차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무지한 사람들의 방법은 ‘우연의 방법’이다. 한 번이라도 스승 없이 무언가를 알아가야만 했던 상황에 놓이지 않았던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방법은 아주 일상적으로 그리고 세계가 시작되면서부터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자코토는 이러한 학습 방법을 ‘보편적 가르침’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넷째, 지능들의 동등성이 함축하고 있는 또 다른 의미는, 무엇을 알아가는 지적 과정들에 실행되고 있는 지능들은 본성적으로 하나이고 보편적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모국어를 익히는데 사용됐던 지능은 문학작품이나 수학의 증명을 이해하는 데 요구되는 지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코토는 “전체는 전체 안에 있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전체의 어떤 임의의 부분으로부터 출발해서, 그것에 대한 앎을 다른 부분과 연관시킴으로써 새로운 것에 대한 앎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후략]
[박기순, 「지적 불평등? 부르디외, 당신이 틀렸어!」(교수신문, 512호)]

자코토가 문학교사였다는 것이 좀 걸리기는 합니다만(언어교육 또는 문학교육이야말로 “전체는 전체 안에 있다”가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분야일 것입니다), 그의 판단에는 경청할 만한 점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울림이 따라옵니다. 조제프 자코토와 같은 전문적인 교육자는 아니지만 피터 번스타인(Peter L. Bernstein)이 강조하는 것도 역시 ‘모르는 선생’입니다. 그는 ‘월街의 요다(Yoda)’로 꼽히는 살아있는 노현자, ‘지혜의 늙은 스승’이었습니다만, 자기가 (예측을 포함해)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전략]- 이번 금융 위기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결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에 맞게 행동해야만 합니다. 리스크 관리는 수학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쳤을 때 생존(survival)하기 위한 시스템, 그게 바로 리스크 관리죠. 분산만 하지 말고, 헤지(hedge)도 하세요(Don't just diversify, hedge!). 생존은 시장이나 경쟁자를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무겁게 다가왔다. 그는 1958년에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경기는 아주 좋았고, 사람들은 처음으로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기 시작했죠. 내가 1958년에 채권을 샀다면, 주식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겁니다. 당시 주식 배당 수익률이 채권수익률 밑으로 떨어지는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이 벌어졌거든요. 이런 일은 금융 역사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죠. 왜냐하면 사람들은 주식이 채권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에 당연히 수익도 높아야 한다고 믿었거든요. 그때 나를 ‘꼬맹이’(kid)라고 부르던 내 파트너는 이렇게 말했죠. ‘걱정 마, 저절로 다시 돌아갈 거야. 이건 현실이 아니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으니까.’하지만, 그때 이후로 주식 배당 수익률이 채권을 웃돈 적은 없습니다. 그 사건은 내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보편적인 해법은 없어요.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른다(We don't know what the future holds)’는 걸 늘 되새기는 수밖에요. 미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위험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판단이 옳았을 때야말로 당신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과신(過信)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늘 당신의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럴 때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해요. 확률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결과입니다.”[중략]

주제를 바꿔, 위기에 빠진 세계 경제에 대해 질문을 던져봤다. 그는 위기 극복을 위해 세계 각국 정부에 좀 더 과감한 정책을 주문했다.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노력보다 더 많은 것을 해야 합니다. 이건 정말 낯선 경험이라서 어떤 방식이 효과가 있을지 누구도 정확하게 알지 못해요.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지만,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효과가 있을 겁니다.”
“만약 백악관에서 오바마(Obama) 대통령과 5분 정도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슨 얘길 해주겠느냐”고 묻자, 그는 “집값 하락만은 꼭 막으라”는 제안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주택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 신용 및 금융 시스템에 대한 압박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 이유는 뭘까. 그의 설명은 이랬다.
“주택 가격은 경기의 선행 지표(leading indicator)인 동시에 문제의 시발점입니다.”
- 이번 위기가 끝나고 난 뒤에도 월스트리트가 세계 금융의 중심적 위치를 유지할까요?
“그럴 겁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아닌가요. 물론 예전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미국이 ‘넘버 원’ 그룹의 자리를 유지할 것만은 분명합니다.”
- 월스트리트가 과거처럼 압도적인 ‘넘버 원’은 아니란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월스트리트의 모든 구조가 달라졌지만, 여전히 그들에겐 노하우가 있지 않습니까. 자본도 있죠. 독보적이지는 않아도 여전히 ‘넘버 원’ 지위에 있을 겁니다.”
- 투자 전략가로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언제였습니까?
“1970년대에 나는 장(場)을 낙관적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사람들은 비관적이었죠. 1958년에는 그 반대였습니다. 내가 비관적이었는데, 두 번 다 100% 틀렸어요.”
하지만 그는 변명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저는 지금도 배우고 있는 중이니까요. 시장에서 50년 이상을 지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많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투자와 관련해 버리고 싶은 습관이 있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안다고 자신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갈수록 겸손해져 갔고, 또 거기에 익숙해졌다고 했다. 그는 칵테일파티 같은 데서도 입 다물고 있으려고 노력했다. “세상엔 늘 아주 똑똑해 보이는 사람, 그리고 잘 들어맞는 투자 모델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제가 배운 것은 가장 훌륭한 사람과 투자 모델이 다음에도 잘 할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 칼럼니스트나 전문가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난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해요. 내 의견에 동조하는 글을 읽는 것은 쉽죠. 하지만, 그건 시간 낭비입니다. 내 견해에 반박하는 사람은 드문데, 그 중엔 짐 그랜트(Jim Grant,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가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는 항상 새로운 것을 일깨워주고, 무언가 배우려고 하며, 도발적입니다.”
- 증손자들에게 투자나 인생과 관련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가?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파스칼의 법칙(Pascal's Law)이죠. ‘결정(decisions)과 선택(choices)의 결과가 미래의 확률을 지배한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투자에서 리스크란 필연적(inevitable)이지만, 필요가 없을 때조차 리스크를 짊어지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건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유하룡,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꿈깨라」(조선일보, 2009. 4. 18)]

피터 번스타인(Peter L. Bernstein)이 인터뷰 내내 강조하는 것은 ‘나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미래는 본디 알 수 없는 것이고, 과거로부터의 분석도 결코 ‘확률’을 높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리스크를 줄이는 일’밖에 없다고 그는 말합니다. 역사의 증인인, 90세를 훌쩍 넘긴 노사(老師)의 말이니 마냥 흘려들을 수도 없습니다. 비단 월가라는 금융계에만 그런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모든 지식계(知識界)에도 그의 말은 타산지석, 금과옥조, 일벌백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선생된 자들은(특히 많이 아는) 반드시 명심해야 될 말인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말(言語)과의 전쟁’에 진을 빼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 공부들을 하다보면 결국은 ‘말이 공부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말들이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없어질 때 공부도 끝납니다. 그렇게 끝나고 나면 허무하기가 그지없습니다. 말들은 언제나 많았지만, 세상은 결국 말로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늘 듣는 이야기지만, 선생은 말로 가르치려고 할 때 필연코 실패합니다. 말이 가르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소귀에 읽어주는 경(經)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