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양선규-문학개론

인문학 스프-싸움의 기술㉞ - 막신일호(莫神一好)

은빛강 2012. 9. 19. 22:31

인문학 스프
싸움의 기술㉞ - 막신일호(莫神一好)

‘막신일호(莫神一好)’라는 말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해 크게 성취하는 것보다 더 신명나는 일은 없다’는 뜻입니다. 2200여 년 전 중국 전국시대의 순자(筍子)가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요. ‘막신(莫神)’이란 ‘더 이상 신명나는 일이 없다’라는 뜻이고, ‘일호(一好)’는 ‘오직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라는 뜻이랍니다. ‘일호’ 하나만을 떼어내서 보면 요즘 말로 마니아(ma...
nia)라는 뜻이 됩니다. 성악설로 유명한 순자는 마니아적 삶을 긍정, 예찬한 것입니다(성악설과 마니아적 삶이 어떤 상호텍스트성이 있는지는 현재로는 알 수 없습니다). 사실, ‘하나에 몰두하라’는 가르침은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굵은 선 하나로 일상을 만들어가라, 생략할 것은 과감하게 생략하라, 버릴 것은 미련 없이 버려라, 무소의 뿔처럼, 좌면우고(左面右考)하지 말고 직진하라, 그런 말들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에 몰두하다 보면 성취는 자연스럽게 따라 올 것이고, 어느 한 곳에서 성취를 알면 인생살이의 참된 의미를 맛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막신일호’는 그러한 ‘일호’의 의미를 ‘막신’이라는 말로 한층 더 보강하고 완성시킵니다. ‘일호’가 ‘인생살이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있게 하는 삶의 태도가 되는 것은 ‘막신(莫神)’이라는 말이 그 앞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막신(莫神), 즉 ‘더 이상 신명나는 일이 없다’라는 말은 이미 그 전제로 ‘인생은 신명나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또한 ‘인생은 본디 신명날 일이 없는 것이다’라는 뜻을 전제합니다(여기서 성악설과 만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막신’이라는 말 속에서, 본디 신명 없는 삶이지만, 인생은 신명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는 ‘성악설 스타일’이 엿보인다는 것입니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하였다지만 인생은 비관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신명 없는 삶은 이미 죽은 삶이고, 진정한 삶을 위해 신명을 얻으려면 다름 아닌 ‘일호(一好)’의 경지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강조했으니까요. 그것이 2200여 년 전 이미 순자가 터득한 인생의 속알갱이였던 것입니다. 작고 사소한 일일지언정 우리는 어느 하나에 ‘미쳐 살아야’ 한다는 것(어느 하나에도 미치지 않은 삶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위험한 상태--진짜 미친 상태--라는 것), 아무런 절실한 것 없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을 향한 발걸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순자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막신일호(莫神一好)라는 짧은 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 표현의 묘를 득하였습니다.

반복해서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생활을 단순화시켜 사소한 일상에서도 우주적 즐거움을 만끽할 것, 끝까지 한 가지 일에 미칠 것, 미친다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내부(內部)를 깨끗이 연소(燃燒)하는 것임을 명심할 것.

사진은 동네 카페의 내부 전경. 가장 좋은 창가 자리가 예약이 되어 있다. 우리 모두의 삶은 누군가에 의해 미리 예약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듯 운명적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