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방주의 창

[방주의 창] 사랑과 정의가 꽃피는 세상2012-07-29

은빛강 2012. 10. 27. 20:30

[방주의 창] 사랑과 정의가 꽃피는 세상 / 김창선

발행일 : 2012-07-29 [제2806호, 23면]

우상이 된 부(富)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로 이름난 마이클 샌델 교수가 지난봄 한국에 초빙되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주제로 공개특강을 가진 바 있습니다. 최근 그분의 저서에서 밝힌 몇 가지 사례를 여기 소개해 봅니다. 우리는 지금 돈으로 무엇이나 사고팔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주로 미국의 이야기이지만 50만 달러 투자로 미국의 영주권을 얻을 수 있고, 수 천 달러를내면 대리모를 구할 수 있으며, 연회비만 납부하면 전문의 휴대폰으로 예약하여 당일 진료가 가능합니다. 상당한 기부금만 내면 유망대학에 자녀의 입학허가를 받을 수 있고, 요금만 내면 러시아워에도 카풀전용차로를 달릴 수 있으며. 소정의 숙박료를 내면 일반 죄수와 달리 깨끗하고 조용한 독방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대가를 지불하면, 신체의 특정부위가 상업광고판이 되고, 명의를 빌려 생명보험증권에 투자하며, 제약회사가 모르모트(실험쥐)에 실험하던 의약품을 인체에도 테스트할 수 있게 되고, 사병과 청원경찰의 모집도 가능합니다. 도착한 순서대로 티켓을 나누는 것이 원칙이지만 대신 줄을 서는 경우는 허다하고, 금융기관이나 항공사 경우에는 아예 귀빈전용전화를 두어 응대하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미국에 오셨을 때 미사참례 입장권이 무료로 배포되었으나, 전매되어 200달러에 판매한다는 광고가 나붙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어린이들에게 상금이 지급되고, 성적이 부진한 아동들이 책을 읽을 때마다 용돈이 주어집니다.

오래 전 제가 미국 서부의 한 연구소 객원연구원이던 시절, 한 지역 신문의 구인 광고란을 보다가 매우 충격적인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비리그(Ivy League)에 버금가는 S대학생 소수가 불임가족을 위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정액과 난자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인데, 키가 크고 IQ가 높다는 학생은 더 고가를 제시하였습니다. 가격이 지배하는 시장논리가 이미 성, 출산, 이민, 의료, 교육, 보험, 통신, 안전, 환경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게 되었으니, 이제 황금만능시대를 맞은 느낌입니다.

여러분도 경험하셨듯이, 저 역시 “돈이 최고야”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돈이면 안 되는 일도 되게 한다”는 말을 자주 들어보았습니다. 돈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명성을 얻게 되니, 이제 부(富)가 행복의 척도가 되었고, 부 앞에 사람들이 절을 하게 됩니다. 부는 이제 우리 사회에 하나의 우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의 존엄성 회복과 경제민주화

20세기 후반에 대두된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시장에 범람하여 경제적 자유와 능률이 주요 가치기준이 되어, 자유경쟁과 개인선호가 우리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고, 불공정으로 인한 빈부격차와 부패현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경제활동의 궁극적 목표가 이윤을 추구하는 사익이 아니라 국민복지의 향상이 아닌가요? 탐욕이 사회적 갈등과 무질서의 원인이요 죄의 뿌리가 아닐까요? 돈 때문에 응급실 환자를 위급상태에 따라 처리하지 않아도 될까요? 사람의 피와 신장과 유아가 돈으로 거래되니, 헌혈과 장기기증 및 입양가족의 선의를 어떻게 우대해야 합니까? 돈으로 모든 것을 사고파는 세상에 살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공동선과 시민정신이 살아 숨 쉬는 사회를 바라는지 이제 우리가 곰곰이 되새겨 볼 문제입니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논리가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켰기에 분배정의의 구현을 위한 경제민주화가 우리사회의 주요한 정책이슈로 등장하였습니다. 이제 분배정의를 실현하고자 시장경제 질서의 확립을 위한 공평한 규칙 제정과 사회안전망의 확충 및 재정기능을 통한 소득재분배에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됩니다. 언론매체도 올바른 여론의 형성과 전파에 힘을 기울여야 하겠지요.

부가 우상시된 오늘날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마태 6, 24)”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복음정신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공동체의 연대성에 앞장서 왔습니다. 사익만을 우선시하는 시장논리에 맞서, 이제 교회가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공정과 공동선을 촉진시키는 정의의 메아리를 울려야 할 때입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인 약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돕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그 존재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평화는 공동선을 보호하고 인간성을 존중하며, 자유로운 의사 소통과 형제애의 실천을 통해 이룩되는 줄 압니다. 사랑과 정의가 꽃피는 세상이 어서 빨리 오기를 소망합니다.



김창선(세례자 요한)씨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외교통상부에서 근무했고, 현재 서울 우이동본당에서 말씀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창선·세례자 요한·서울 우이동본당 말씀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