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방주의 창

[방주의 창] 믿음의 문턱을 넘어2012-09-23

은빛강 2012. 10. 27. 20:36

[방주의 창] 믿음의 문턱을 넘어 / 김창선

발행일 : 2012-09-23 [제2813호, 23면]

무엇을 찾는 사람인가?

어느 일요일 아침 본부중대장 S소령이 우리 내무반에 들러, 쉬고 있는 병사들에게 “주일에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느니, 기쁜 소식도 듣고 보물도 찾으러 교회에 나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대뜸 “하느님을 안 믿어요”라고 대답했지요. 그분은 “그래? 너는 안 와도 돼. 그 대신 다음 토요일 점심 후 내방으로 와”하고는 동료들과 함께 교회로 떠났습니다.

교회에 다녀온 그들은 “너, 중대장에게 불복종했으니 큰일 났다”고 야단이었지요. 불안한 한 주일이 지나 제가 그분을 찾아갔을 때, 그는 의자를 건네며 “대화 좀 하자”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주말이면 둘만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너는 하느님이 안 계신다고 생각하니, 아니면 다른 신을 믿는 거니?” “너의 인생목표는?”과 같은 그의 질문으로 대화는 시작되었지요. 신학을 공부했다는 그분으로부터 천지창조, 하느님과 인간, 모세의 기적, 시나이 산의 계약, 강생의 신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등에 관한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한 정숙한 서울색시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고 나서 성당을 같이 다니게 되었지요. 교리반에 나가야 하지만, 공직에 야근이 잦다보니 통신교리의 길을 택했고, 성가와 성수, 기도와 미사전례 같은 예절교육은 아내가 도와주었습니다. 수료증을 갖고 신부님을 찾아뵙을 때, “성사와 예식은 제대로 배워야 하니 교리반에 나오세요”라고 하셨어요. 지하철도 없던 시절, 상사의 눈치봐가며 광화문에서 잠실까지 택시를 타고와 아내가 싸온 주먹밥을 먹고 출석하면서 믿음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이제, ‘요한’이란 이름으로 새 사람이 되었지요.

어린 시절 어머님의 길쌈 덕분에 무명옷과 삼베옷을 즐겨 입었고, 쑥떡과 꽁보리밥을 먹으며 초가집에 살았어도 행복했었습니다. 어른이 되고나니, 철 따라 갈아입을 옷에다 자녀교육과 경조사며, 박봉에 집 한 칸 마련하느라 삶은 팍팍했고 옆 돌아볼 틈조차 없었습니다. 샐러리맨 생활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고요.

그뿐입니까? 세례를 받았으니 명색이 가톨릭신자인데도 교회와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야했습니다. 세속에 살면서 교만, 인색, 시기, 분노, 음욕, 탐욕, 나태와 같은 악습에 젖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하느님은 다른데 묵고 계셨을 테고, 양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저의 주보성인인 세례자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동굴에서 살면서도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마태 3,1-4)하고 큰소리 치며 성인답게 살았는데, 저는 어디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단 말입니까?

순례의 길에서 찾은 행복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과 신앙의 전수를 위한 새 복음화를 위하여,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께서 「믿음의 문」(Porta Fidei)이란 교서를 통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이 되는 2012년 10월 11일부터 2013년 11월 24일(그리스도왕대축일)까지 ‘신앙의 해’(Year of Faith)로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신앙교리를 바르게 알고, 깊은 성찰과 통회로 신앙고백을 새롭게 하며,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기회를 맞게 된 것은 참으로 큰 기쁨이요 은총입니다.

믿음의 문턱을 넘으면 일생을 주님과 동행하는 순례자가 됩니다. 구원의 역사 안에는 그리스도의 증인이요 신앙의 모범인 성모님과 사도들, 성인과 순교자들이 계십니다. 이 시대에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평신도들도 일상의 삶속에서 기도와 성사로 ‘사랑의 계단’을 오르고, 애덕의 실천으로 이웃에 주님의 사랑을 증거 하면 세상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의 가치 간에 흔들리고 계신가요? 주님과 우상 간에 누가 참 하느님인지는 기원전 8세기에 카르멜 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하여 승부가 끝났습니다(1열왕 18,20-40).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고 들꽃처럼 평화롭게 살아가는데 왕따 당한들 어떻습니까? 수많은 성인들도 고독과 고난 속에서 살았답니다.

사랑이신 주님은 어둠을 밝히시는 ‘세상의 빛’이요,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생명의 빵’이며, 목마름을 달래주시는 ‘야곱의 우물’이기에, 전능하신 하느님만을 믿고 따르겠다는 세례 때의 결심을 새롭게 합시다. 하나 명심할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마태 16,24).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삶에서 보듯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순례의 길을 걷는 우리는 참 행복합니다.



김창선(세례자 요한)씨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외교통상부에서 근무했고, 현재 서울 우이동본당에서 말씀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창선 (세례자 요한·서울 우이동본당 말씀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