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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경제민주화를 꽃피우려면2012-09-02

은빛강 2012. 10. 27. 20:34

[방주의 창] 경제민주화를 꽃피우려면 / 김창선

발행일 : 2012-09-02 [제2810호, 23면]

경제민주화는 공동선을 위한 길

경제사정이 어렵다고 합니다. 언론 보도나 경제지표를 보더라도 그러합니다. 높은 청년실업률,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재산손실, 가계부채의 위기, 중산층의 몰락 등이 경제난의 징표로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소득불평등이 심화됐고 저소득층 가구의 엥겔계수(소비지출 중 식료품비의 비중)가 수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답니다. 그러다보니 재벌기업의 순환출자와 지대추구, 불로금융소득, 면세와 조세회피, 기업 경영의 불투명, 시장정보의 불완전 등이 논란의 대상입니다.

우리 사회에 ‘경제민주화’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기업과 계층 간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어, 대선주자들이 ‘경제민주화’를 핵심공약으로 제시하여 갑론을박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경제민주화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그 향방을 가늠하고 있을는지요?

경제민주화란 사실 어려운 말입니다. 그것은 이념과 가치판단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의미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계에서조차도 이에 대한 통설을 아직 정립하지 못한 상태라 바르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겠지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는 민주주의가 그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가 요구됩니다. 경제민주화란 경제주체의 자유로운 선택과 자발적 협력이 가능하도록 경제적 자유를 존중하면서 기회의 균등과 분배적 정의의 실현으로 경제적 평등을 보장하는 우리 모두의 공동선을 위한 길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헌법(119조)도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국가가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제민주화가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에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공정과 불평등의 문제가 왜 해결되지 않고 있는지요?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경제논리인 시장경제의 능률과 경쟁을 촉진시키려고 작은 정부, 민영화, 규제완화, 감세 정책이 추진되어, 기업으로 하여금 국가의 규제와 통제에서 벗어나 이기와 탐욕을 추구한 결과 금융위기와 경제적 불평등 및 차별이라는 시장경제의 실패가 초래됐다고 지적합니다. 우리의 삶이 경제적 타당성과 형식적인 적법성에만 의존하다보니, 인간성은 상실되고 돈이나 시장권력에 종속하는 물질 중심의 노예가 되고 말았지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음을 세상은 알면서도 돈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인간다운 세상을 누리는 사랑의 길로

앞으로 경제민주화로 신자유주의의 족쇄를 풀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경제체제를 이룩해야 하겠습니다. 능률과 형평이 조화된 가운데,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바탕으로 국민 각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공정한 경쟁질서 위에 경제적 자유를 누리면서 일자리 확보와 분배적 정의가 실현되어, 경제적 활력이 넘치고 실현가능한 복지를 누리는 경제체제를 수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으로 경제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분배정의의 실현과 복지증진을 둘러싸고 다양한 욕구가 분출되리라 짐작됩니다. 경제민주화를 이루려면 자유시장경제의 논리와 시민가치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서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일자리창출, 노동의 권리와 존엄성, 지역균형개발, 조세와 재정지출을 통한 재분배, 실현 가능한 복지수준, 인격과 능력개발 교육,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제의 윤리기반 확립 등에 관한 종합적 시각의 장·단기적 정책개발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폐해를 윤리적 차원에서 지적하고, 신앙인으로서 알고 실천해야 할 사회교리를 가르쳐왔습니다. 이 교리는 인간다운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원칙과 가치를 천명한 것입니다.

가톨릭사회교리는 인간 존엄성을 바탕으로 공동선, 보조성, 연대성의 원칙을 지키는 것인데 이는 항구적인 진리입니다. 공동선을 보장하려면 정부가 사회의 다양한 이익을 정의의 요구와 조화시키는 의무를 지닙니다. 모두가 행복한 인간다운 세상을 누리도록 재화는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하며, 특히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정의론의 두 석학, 존 롤스(자유주의자)와 마이클 샌델(공동체주의자)도 가난한 자를 우대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시대의 주어진 여건에서 어떠한 법과 제도도 사회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며 평화로운 삶을 보장해 줄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감싸주고 가진 것을 나누는 가장 좋은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김창선(세례자 요한)씨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외교통상부에서 근무했고, 현재 서울 우이동본당에서 말씀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창선(세례자 요한·서울 우이동본당 말씀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