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시인 임보 교수님 방

[구름 위의 다락마을] 발문

은빛강 2012. 11. 29. 06:34

[구름 위의 다락마을] 발문

<새로운 신화(神話)를 꿈꾸며>



신화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소망의 결정結晶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비상飛翔하고자 하는 꿈이다.

나는 생명 활동을 자아확대自我擴大의 실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생명체는 자신의 몸 밖에 존재하는 객체(사물)들을 끊임없이 자신의 체내로 끌어들이면서 자아화自我化한다. 자아화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호흡 작용과 음식물을 섭취하는 행위를 들 수 있다. 한 그루의 나무를 보라. 그의 뿌리와 잎으로 우주 공간 속에 널려 있는 수많은 요소들을 얼마나 열심히 끌어모으고 있는가? 삶이란 생명체의 입장에서 보면 자아확대를 위한 지속적인 섭취 행위이고, ...
신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세계성)들을 생명체들 속에 고루 나누어 주고 있는 분배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암컷과 수컷 양성兩性의 결합으로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그 불편한 생명 번식의 원리도 세계성 확장의 의지로 설명될 수 있다.(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生命詩學序說’ 『아픔을 꽃으로 피우나』<우이동 시인들 제14집>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음)

하여튼 생명체의 모든 활동은 자아확대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모든 행위, 심지어 고급의 문화 활동조차도 예
외일 수 없다. 정치는 타인들에 대한 지배욕에서, 경제는 물질들에 대한 소유욕에서, 종교마저도 자아를 내세來世에로까지 확대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모든 언술 행위 역시 궁극적으로는 자아확대를 위한 욕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이란 자아확대 곧 대상 성취에 대한 욕망이 기술적으로 표현된 언술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들은 언어를 가지게 되면서부터 그들의 욕망을 언어로 표출해 내고 있다. 그들이 표출해 낸 언술 중 한 종족이나 인류의 보편적인 욕망에 뿌리하고 있는 것들은 다수의 호응을 얻게 되어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것이 곧 설화說話다. 말하자면 설화는 인간의 보편적인 소망과 꿈이 서려 있는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생산하고 있는 많은 문학 작품들 가운데서도 인간의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욕망에 닿아 있는 소수의 어떤 작품들은 미래의 설화로 남게 된다. 소위 고전이란 작품들은 그러한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욕망들에 의해 선택된 설화라고 할 수 있다.

설화 중에서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빚어진 것이 신화神話다. 신화는 시간과 공간의 굴레로부터,
유한성으로부터, 제한된 인간의 능력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소망하는 꿈이다. 그래서 신화는 무한성無限性, 비지상성非地上性, 신성神性, 초인성超人性 등의 특성을 지니게 된다.

『구름 위의 다락마을』은 지상적 삶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꿈이다. 이러한 꿈은 일찍이 우리 조상들의 삶 속에서도 이미 자라고 있었다. 그것이 곧 신선사상神仙思想이다. 그래서 이 시를 일러 선시仙詩라고 해 본다. 이 연작은 시적 화자가 이상향인 선경仙境을 주유하면서 그가 보고 겪은 것을 단편적으로 기록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거의 전거典據가 있는 얘기들이 아니고 내나름의 순수한 상상력의 소산이기 때문에 만들어 내기가 여간 더디지 않았다. 말하자면 주제넘게 새로운 신화를 꿈꾸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얘기들이 얼마나 많은 인간들의 근원적인 소망에 뿌리할 수 있느냐에 따라 생명의 길이가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신화는 까마득한 옛날 땅 속에 묻혀 이미 굳어진 죽은 화석과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내면 속에서 끊임없는 부화를 거듭하면서 유한한 인간의 고독을 따뜻이 어루만진다. 신화는 우리들 공유의 꿈이다. 꿈꾸는 자들에게 맑은 위로가 있을진저!

'문학의 길잡이 > 시인 임보 교수님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와 제목>  (0) 2012.11.29
<은유의 유형>  (0) 2012.11.29
<생명시학서설(生命詩學序說)>  (0) 2012.11.29
<운포(雲浦) 가는 길> [仙詩]  (0) 2012.11.29
<녹정(綠井)> [仙詩]  (0) 2012.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