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시인 임보 교수님 방

<은유의 유형>

은빛강 2012. 11. 29. 06:44

<은유의 유형>

시의 대표적인 표현 기법이 비유라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비유는 하나의 사물(主旨, tenor)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사물(媒體, vehicle)을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두 사물의 결합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물은 서로 공통적인 요소 곧 공유소(共有素)를 지닌다. 예를 들어 ‘이 호수는 거울처럼 맑다’라는 비유가 있다고 치다. 주지(T)인 ‘호수’는 ‘맑다’라는 공유소(S)에 의해 매체(V)인 ‘거울’과 연결된다. 공유소가 크면 클수록 두 사물의 결합은 설득력이 강하다. 직유는 앞의 예문에서처럼 공유소가 분명히 드러나 있는 구조다. 그런데 그 공유소가 생략된 구조가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주지와 매체가 바로 결합한다.
그러면, 주지와 매체가 결합하는 양식에...
따라 은유의 구조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등가(等價)의 구조(T=V)

등가의 구조란 주지(T)와 매체(V)의 관계가 주어와 서술어로 연결된 구조다. 즉 ‘내 마음은 마른 나뭇가지’라는 비유에서 보면 주지인 ‘내 마음’은 주어이고 매체인 ‘마른 나뭇가지’는 서술어다. 생략된 공유소는 유추에 의해 추측하는 수밖에 없다. 이 비유에서는 ‘딱딱함’ ‘황량함’ ‘메마름’ 등의 공유소를 추정할 수 있다.

다음의 작품은 하나의 주지에 여러 개의 매체가 병치된, 많은 등가 은유들의 나열로 이루어진 특이한 작품이다.

나의 본적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이다. 밟으면 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나의 본적은 거대한 계곡이다./ 나무 잎새다./ 나의 본적은 푸른 눈을 가진 한 여인의 영원히 맑은 거울이다./ 나의 본적은 차원을 넘어다니지 못하는 독수리다./ 나의 본적은/ 몇 사람밖에 안 되는 고장/ 겨울이 온 교회당 한 모퉁이다./ 나의 본적은 인류의 짚신이고 맨발이다.
―김종삼 <나의 본적> 전문

둘째, 결속(結束)의 구조(T의 V, TV, 혹은 V의 T, VT)

주지와 매체, 혹은 매체와 주지의 결합이 수식어와 피수식어(관형어+체언)의 관계를 이룬다.

가) T의 V인 경우-- ①명상의 호수, ②추억의 오솔길, ③별들의 잔치

주지가 매체의 수식어가 되어 있다. ①은 호수처럼 잔잔하고 깊은 명상, ②는 오솔길처럼 그윽한 추억, ③은 잔치 마당처럼 풍성한 밤하늘의 별들을 뜻한다. 공유소가 생략된 상태에서 주지와 매체가 관형격조사 ‘의’로 직결되고 있다.

나) TV인 경우--①교통 지옥, ②입시 전쟁

이 경우는 관형격조사 ‘의’마저도 생략된 상태로 주지와 매체가 바로 결속되고 있는 경우다. 즉 ①지옥처럼 견디기 괴로운 교통 사정, ②전쟁처럼 치열한 입시 경쟁을 표현하는 말이다.

다) V의 T인 경우--①한 오라기의 희망, ②한 톨의 양심, ③철의 재상(宰相)

이 경우는 가)와는 반대로 주지와 매체의 위치가 바뀌어 매체가 수식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구조다. 즉 ①한 오라기의 실처럼 가느다란 희망, ②한 톨의 알갱이처럼 작은 양심, ③쇠붙이처럼 굳고 냉철한 재상이다.

라) VT인 경우--①무지개 사랑, ②놀부 사내

매체가 바로 주지에 연결되는 구조다. ①무지개처럼 환상적인 사랑, ②놀부처럼 인색한 사내다.

셋째, 생략(省略)의 구조(T가 생략된 구조)

①밤하늘의 눈들이 지상을 지켜보고 있다. (T:별, V:눈)
②천사들의 합창 (T:어린이, V:천사)

이 구조는 주지조차도 생략되고 매체만으로 표현되는 경우다. ①에서의 ‘눈’의 주지는 ‘별’이고 ②에서의 ‘천사’의 주지는 어린이인데 주지는 생략되고 매체만 드러난다. 겉으로 보기엔 상징의 구조와 비슷하나 주지가 명백히 추정될 수 있는 것이 상징의 경우와는 다르다.

대유(代喩)도 주지가 생략된 구조이므로 은유의 셋째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유는 흔히 환유(換喩)와 제유(提喩)로 구분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가) 환유: 특징이나 속성으로 그 사물을 대신함
왕관→임금, 감투→벼슬아치, 별→장군, 백의→한민족, 왕눈→눈 큰 사람

나) 제유: a) 일부로 전체를, b) 부분으로 전체를 대신함
a) 빵→식품 전체(밥, 빵, 떡, 과자, 과일…) [예문]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약주→술 전체(소주, 양주, 막걸리, 약주, 포도주…) [예문] 약주 잘 하시나요?
칼→무기 전체(창, 칼, 총, 활…) [예문]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
붓→필기도구 전체(연필, 펜, 붓, 만년필…) [예문] 붓이 창보다 강하다.
b) 돛→배 [예문] 두 개의 돛이 경주를 하고 있다.
입→사람 [예문] 입이 열이다. 손→사람 [예문] 손이 모자란다.
눈→사람 [예문] 여러 눈이 지키고 있다.

주지는 숨고 매체만 드러나는 것이 은유의 셋째 유형과 흡사하다. 그러나, 대유에서의 주지와 매체의 관계는 공유소(동일성)가 아니라 주로 인접성(隣接性)에 근거하게 된다. 공유소와 인접성이 희박한 비유는 주지와 매체의 결합이 폭력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될 때 이 비유는 역설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현대시에서는 의도적으로 낯선 사물들과의 결합을 통해 신선한 충격을 생산해 내고자 한다. 이는 비동일성을 지향하려는 현대 은유의 역설적 구조라고 설명할 수 있다.

비유 가운데 특히 은유가 시에서 즐겨 사용된 것은 시의 중요한 표현 장치인 숨김(은폐지향성)과 불림(과장지향성)의 역설적 특성을 아울러 지니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은유는 단순한 수사적 기능을 넘어서 두 사물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즉 시에서의 은유는 매체에 의해 주지를 설명하려는 데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이질적인 사물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 뜻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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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의 시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