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것은 신비입니다.]
<162 - 2016. 11. 22. 화>
다른 이들을 치유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불리움 받은 사람들 자신이 고통과 질병을
겪도록 불리운 것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보아왔습니까?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 온 도로시 케린은
후일에 자신의 과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고프리 모와트는 장님이 되고 난 후에야
치유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직무가 약점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자신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청했습니다.
비오 신부는 성흔의 고통과
육체적 무능함을 견뎌냄으로써
그의 직무가 거룩해졌습니다.
이러한 것은 오랜 신자생활을 한 사람들에게는
친교와 그리스도의 수난의 열매들을
더욱 온전히 나누라는 부르심으로 다가오고,
그리스도 안에서 갓 태어난 사람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에게는
자유로 초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확실히 이것은 신비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요청이나,
병자들의 회복을 지켜보는 일 같은
쉬운 일들은 조심하여 잘해나갑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더 많은 용기가 주어졌다면
우리도 그만큼 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주신 시련을
우리에게 주었더라면, 우리는 분명
절망하게 될 거라는 것을 예견 하셨기에
주시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침묵에 이르는 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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