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다락방

기회 (Kiros)- 종말론적인 구원의 시간

은빛강 2017. 5. 1. 08:36

 

*종말론적인 구원의 시간인 카이로스*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박물관에는

그리스의 조각가

리시포스(Lysippos)에 의해

만들어진 풍자적인

대리석 부조 조각상이 있다.

앞머리에는 머리숱이 무성하지만

뒷머리는 대머리이고,

발에는 작은 날개가 달려 있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발견했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다.

그의 이름은 바로 '기회' 다.

조각상의 주인공은

제우스의 아들인

'카이로스'(Kairos) 라는

'기회' 의 신이다.

그리고 조각상의 왼손에는 저울이 있는데,

기회가 왔을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빨리 결단을 내리라는

뜻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사막에 5일째 비가 내리고 나니

성큼 가을이 다가온 느낌이다.

4시간을 달려와 미사와 식사를 하고 난

뉴멕시코 주의 저녁은 가을이다.

숙소에 와서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조금 쌀쌀한 느낌이다.

이렇게 시간은 유수처럼 지나간다.

아침에 아이손(ISON) 혜성의 파편들이

지구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시간의 급박함과 긴장감을 느낀다.

그러나 내가 걱정한다고

무엇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B. Spinoza)의 말처럼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그렇게 살면 된다.

다만 내 걱정은 수많은 영혼들이

하느님을 모르거나 무시하고

현세의 노예가 되어 사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떻게 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의 미지근한 신앙에 열정의 불을

다시 붙일 수 있을까?

주일도 안지키고 돈 벌겠다고

가게에 앉아 있는 그들에게

하느님은 어떤 존재일까?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예수가 밥 먹여주냐?"고~~~

그들에게 신앙은 현실의 문제,

생존과 생계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딴 나라 이야기이거나

나약한 자들의 자기 합리화와 위안이요,

현실과 유리된 궤변이요 도피일 뿐이다.

그들은 주님의

심판을 믿기나 하고 있는 걸까?

왜 그들에겐 주님께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걸까?

사람들이 성령을 체험하면

공기처럼 숨처럼 살아계신 주님을

매 순간 이렇게 의식하고 느낀다면,

저렇게 살 수 없을텐데...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신앙교리성에 계실 때 쓰신

사도신경의 해설인

<그리스도교 신앙, 어제와 오늘>이라는

책에 인용된 '어릿광대와 불타는 마을'의

장면이 연상된다.

서커스를 준비하기 위해

어릿광대 복장을 한 사람이

그곳에 엄청난 불이 나서

옆 마을에 번질 것 같자

너무 급한 나머지 옆 마을로 달려가

닥쳐오는 불이라는 재앙을

피하라고 아무리 외쳐도,

그의 간절하고 애달픈 호소를

자신의 공연에 손님들을 끌어들이려는

호객 행위로 보면서 쳐다보지도 않고

콧방귀도 뀌지 않는 그런 반응 말이다.

현세는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시험하는 기간이며,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영생과 영원한 멸망이 결정되는

중차대한 순간들인데도 별 감흥이 없다.

아버지께 가는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결코 아버지 하느님께

갈 수 없는데도(요한14,6 이하)

이렇게 의식과 양심이 무딜 수 있는가?

그렇다면, 개신교의 주장대로 구원받을 자는

이미 영원으로부터 정해져 있는 것일까?

말씀을 읽게 하고

그 뜻을 깨우치고 알게 하면,

죄짓지 않고 은총지위에서 기도하게 하고

성령의 은총을 받으면

변화가 반드시 오는데...

우리 앞에서 지나가 버린 버스는

기다리면 또 오지만, 인간의 자유를 시험하는

이 인생이라는 시간과 기회는

한 번밖에 없는 유일회적인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삶이다.

하느님께서

"너는지구라에서 한평생 무엇을 하다 왔느냐?" 고

물으시면 우리는 대답을 해야 한다.

하느님의 영들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금 이 순간도 생명의 장부에

다 기록하고 있다.

하느님의 도구들인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의 사건들을 통해서,

만물들을 통해서

역사(役事)하시고 만나러 오시며,

은총을 베풀러 오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그분의 은총의 '카이로스'(기회; 때)를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을

제발 저지르지 말았으면 좋겠다.

 

(임언기 신부님 '기도는 나의 성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