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문학인의 방

[스크랩] Re:어머니의 취떡

은빛강 2007. 2. 26. 12:52

                                        
                                      
 

 어머니의 취떡 

                      최장순

 

오늘은 정월 초하루 설날이다.

 동네 떡 방앗간에서 친절하게도 주부들의 수고를 덜어준 기계떡으로

떡국과 인절미를 손쉽게 먹는다.

연례행사이지만 그래도 설날의 옛 추억은 지울 수 없다.

섣달그믐, 아이들의 까치설날에 준비한 떡이며 음식을 군침 흘리며

기다리는 자식들에게 맛 뵈기로 나누어 주시던 어머니의 애정 어린 손길을.......

 어느 집이나 할 것 없이 명절 때면 이웃에게 떡을 돌렸고

떡 심부름하는 아이들은 신바람이 났었다.

“가는 떡이 크면, 오는 떡도 크다”는 속담만큼이나 이웃 간에

떡 인심이 넉넉했던 당시의 시골풍경이 아련히 떠오른다.

척박했던 그 시절 아껴둔 쌀로 떡을 해 먹는다는 것은

명절 때에나 맛보는 호사(豪奢)였다.

떡을 돌리고 받다보면 떡살 모양으로도 어느 집 떡인지 구별이 되었으니

생각 해 보면 떡살무늬야 말로 그 가문의 심벌(symbol)이기도 했다.

 떡은 삶과 세월의 빛과 그림자로 농축되어왔다.

큰 형님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은 각기 삶의 터를 찾아 흩어져 살고 있다.

이런 형제들에게 어머니는 유일한 자식사랑의 낙(樂)으로

떡을 손수 만들어 보내셨다.

늘 한 가지 떡만 고집하여 만드셨는데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만드시는 이름 하여 어머니표 ‘취떡’이다.

취나물은 주로 고산지대에서 나는 나물로 여러 종류가 있지만

꼭 곰취를 쓰신다.

 

매년 봄이면 대관령 기슭에서 노구(老軀)의 몸으로

곰취를 뜯으실 땐 앞으로 뒤로 수십 차례 넘어지고 구르시기도 하신단다.

이렇게 힘들여 뜯은 취나물을 말려 두었다가 빻아 찹쌀을 섞어 만드시는데

그 맛이 참으로 일품이다.

보내주신 떡을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가끔씩 생각 날 때마다

꺼내서 후라이팬에다 살짝 구우면 아침식사로도 좋을 뿐만 아니라

늦은 시간 출출할 때 간식으로 잘 먹기도 하였다.

 사랑이 듬뿍 담긴 어머니표 취떡을 맛보지 못한지

벌써 몇 년째이던가? 90세를 넘기시면서 힘에 부치셔서

만들어 보내지 못하셨다.

가끔은 자식들이 힘들고 구차스럽게 왜 만들어 보내느냐고

도시의 간편한 문화에 길들여진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자식들의 넋두리였던가?

하지만 묵묵부답으로 한해도 거르지 않고 끈질기게 만들어 보내주셨다.

이제 그 떡을 몇 년째 받지 못하고서야 새삼 안타까운 마음에

목이 메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그동안 어머니의 지극 정성을 그저 당연한 듯 넙죽넙죽 받아먹고도

그 애틋한 마음을 헤아리는 데는 소홀 했었다.

그러니 나이만큼이나 설 떡국을 많이 먹어왔지만 결국 “헛 떡국만 먹었다” 고

솔직히 자인할 수밖엔 없을 것 같다.

어머니의 그리운 손맛, 정성 드려 만드신 취떡을

이젠 받을 수도, 기대 할 수도 없는 세월의 한(恨)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꿈에서라도 어머니가 만들어 보내주시는 취떡을 “웬 떡이냐!” 싶게 받아보았으면 좋겠다.

“누워 떡먹기”처럼 쉽게 먹었던 어머니의 취떡,

이젠 영원히 추억에서만 맛보아야할 처지가 못내 아쉬운

2007년 설날 아침이다.

배경음악;Mother Of Mine / Jimmy Osmond ♬
출처 : 청다문학
글쓴이 : 벽옥 원글보기
메모 :

'문학의 길잡이 > 문학인의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인이여 시인이여  (0) 2007.03.10
외도의 봄-한뫼-조세용박사님글  (0) 2007.03.01
[스크랩] 외도(外島)의 봄  (0) 2007.02.24
[스크랩] 유선을 부른다.  (0) 2007.02.23
[스크랩] 봄비사랑  (0) 2007.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