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말을 걸다 --권대웅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햇빛이 말을 걸다

 

권대웅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시집『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문학동네, 2003)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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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에 대한 봄의 대답은

돋아나는 잎과 꽃잎입니다

그 눈부심 앞에서

우리는 매번 새롭게 놀랍니다

마치 봄날의 햇빛 아래

처음 서 있는 나무처럼,

나를 맡길 수 있는 빛을 향해

다시금 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지난 겨울의 상처와 눅눅한 마음을

햇빛에 내어 말리는 봄날

도란도란 속삭이는 햇빛의 소리를 듣습니다

뛰쳐나가고 싶은 근질근질한 몸의 화답이

봄임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 봄에 햇빛의 말소리가 적어

혼나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보면서

소중함을 더욱 느낍니다

 

 

 

                                  詩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