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詩하늘 詩편지

피크닉---이기성

은빛강 2010. 6. 7. 21:06


공원을 지나며 내가 잠깐 웃었던 것도 같고
또 만나자던 약속은 바람처럼 그늘이나 흔들며 지나가고


       





피크닉---------------------------------이기성



정오의 파라솔 아래서
나는 아직 명랑한 아이
흰 조약돌은 따뜻하고
검은 주머니 속에선 갑자기 하얀 새가 튀어나오지
아아, 아무 것도 놀랍지 않아
환한 바람이 지나가는데 다정한
여자는 긴 손가락으로 근심의 피륙을 짜고 있네
거기서 나는 검은 모래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
낡은 기계의 태엽처럼 태양이
공중을 한 바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아름다운 커브를 그리며 날아간 새처럼
너는 나를 멋지게 속였지
잘린 손가락이 모래에 파묻힌 채 식고 있어

안녕, 차가운 오후, 나는 너를 떠나겠어
은색 나팔들이 일제히 귓속을 울린다
고요한 오후의 목덜미를 핥는 그늘의 혀
이젠 너의 손가락을 빨지 않고도 잠이 들 수 있지

짧아진 그림자를 조금씩 끌어당겨서 덮고
뜨거운 모래 위에서 누워 있는데
벌어진 여자의 입술에서 진한 유황냄새가 흘러나와
공장의 손가락들은 푸른 나무가 되었지

붉게 녹슨 태양의 철문을 천천히 빠져나가
먼 곳에서
나는 흰 종이처럼
젖은 머리카락처럼 나부끼게 될거야



*시는 시현실 봄호에서 골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