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종이강에 그린 詩

[제 95호 종이강에 그린 詩]-창 밖, 한 아이--배용제

은빛강 2010. 11. 16. 18:55

[제 95호 종이강에 그린 詩]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가고 오고 바람이 불고 바닷물이 넘치고
하늘이 푸르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이 모든 것을 한 눈에 보는 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 눈 앞에 너무 오래 노출된
먼지처럼 잦아드는 저 먼 아이,

       





창 밖, 한 아이

-배용제

가방을 맨 한 아이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나무들은 잠깐 푸르렀네

구구단을 외며 아이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생의 마지막 공식을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나는 오래 창 밖을 내다보았네
지루한 풍경을 흔들며
바람은 공중으로 솟구쳤네

나는 몇 번 눈을 깜박거렸을 뿐인데,
아이가 사라지고 노인이 오네
갸우뚱 두리번거리며
순식간에 전혀 낯선 풍경이 오네
나는 너무 오래 창 밖을 내다보았네
동그래진 눈동자 속으로 계절들이 몰려왔다 가고
금세 익숙해지고 낯설어지네
잠시 눈을 깜박거릴 뿐이네

더 이상 새로운 공식이 없는 거리를 향해
새로운 아이가 지나가고 있네
나는 너무 오래 이 창 밖을 내다보았네



*시는 계간 「서시」2006 겨울호에서 골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