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방/오늘의 생각

인연과 망각사이

은빛강 2011. 1. 5. 18:22

 

 

오랜 시간 정신을 여기저기 흘리며 한 해를 마감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늘어지고 지쳐오는 육신 위로 잠의 무게인지 알 수 없는 무거운 것들이

육신을 밟고 있었다.

찬바람이 유리벽을 타는 듯 스며들고 털 복숭이 강아지가 얼굴을 부비 대는 통에 눈을 떠 보았다.

참 예전 같지 않다.

그 예전에는 며칠을 지새워도 한번 쭉 자고나면 몸이 모든 걸 감당을 해 냈다.

 

늘 그래왔듯이 일어나 편두통약을 삼키고 책상에 앉았다.

나에게 온 메일들 가운데 정말 오래 된 지인의 메일이 있었다.

지금은 캐나다 토론토에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우리는 아주 조금씩 나이 들어가면서도 오래전 모습들을 그래도 간직하고 있어 고마웠다.

 

그리고 TV 방송을 통해서도 아주 잊어버린 인연을 만났다.

나는 잊음과 망각을 구분을 잘 못한다.

잊음은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이고

망각은 나도 모르게 잊어버린 것들이다.

지인은 망각을 했었고

인연은 아주 지워버렸다.

그런데 어찌하여 모두 반갑고 기쁜 것일까,

현 문단은 시기와 폄하가 즐비한 곳에서 상심을 드러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곳이다.

그러나 지인은 덕을 담은 참한 사람이다.

그래서 기쁘고 더욱 반갑다.

 

그러한 것들로 인해 새해 첫 주간에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왠지 그 예전처럼 희망이라 던 가 내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쁜 시간들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했지만, 사실 이제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있다.

그 대신 그냥 지난날들을 되짚어 올라 가보았다.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을 자신에게 던져 본다.

아무것도 마음 속 까지 무언가 저리게 와 닿는 것이 없다.

그리움들이 연소되고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단지, 현재 남은 시간들에게

나는 어디서 부터 발을 내 놓을까란 걱정만 늘어졌다.

 

가끔, 울컥하는 뜨거운 것이 가슴을 흔든다.

무엇일까,

어디서부터 내가 잘못 살아 온 것일까?

하염없는 후회만이 등 뒤에 긴 그림자로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지나간 인연과 망각 사이에서......,

 

                       93년 백지 동인 모임에서 우측 조미나 선생님(영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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