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종이컵
홍문숙
도서관 자판기, 종이들은 불면으로 가득 차 있다 밤새 지식들이 비워댔는지 어떤 컵은 격렬한 고뇌를 받아낸 흔적이 역력하다 맨 밑바닥까지 벽을 타고 내려가다 굳은 갈색 의중으로 보아 그는 몇 걸음 타협 쪽으로 혹은 넥타이를 고쳐 조이며 무채색 고집을 새겼으리라 컵이란 게 다 바람의 운명 같아서 다시 담거나 비우지 못할 저 종이컵이야 말로 仙者의 풍모 아닐까 제 몫의 피곤과 우울로 쥐어진 채 하얗게 표백된 부피로 서성거렸던 건 지난밤으로 족하다 입술 가까이 슬그머니 묻은 초조를 자르르 적셔주며 누군가 딸깍, 또 다른 갈등 하나 맛있게 뽑는 소리를,
나는 도서관을 들어서며 한 모금의 커피와 따끈한 지식 몇 줌 책갈피에 숨긴다
-시집『눈물의 지름길은 양파다』(차령문학, 2009) -사진 : 다음 이미지 -------------------------------------------------
위대한 발명인지도 모른다 삶에 유용하게 쓰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치부할 수 있겠다 자원이란 유한해서 쓰기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진다 대체로 사용 뒤에는 그냥 버려지거나 구겨진 채 버려지는 게 대부분인데 재활용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또 달라진다 잠을 좇아내며 공부하느라 커피 몇 잔이라도 비웠을 텐데 그 와중에 종이컵이 겪어야 했을 모습들이 아름다운 상상으로 다가온다 지식인들에게서 받았을 종이컵의 수모도 더러 있었을 터 무관심의 대상이 아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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