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문학과철학개론서

우청우탁(寓淸于濁)⑭ - 내리는 사랑, 아버지

은빛강 2012. 3. 11. 16:10

<인문학 스프-문식> 우청우탁(寓淸于濁)⑭ - 내리는 사랑, 아버지

작성: 양선규 2012년 3월 11일 일요일 오전 11:00 ·

인문학 스프-문식

우청우탁(寓淸于濁)⑭ - 내리는 사랑, 아버지

“「성탄제」 있잖아요?”

아이가 갑자기 국밥을 뜨다말고 물었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국밥집에서 늦은 저녁을 들었다. 집 근처에 있는 소문난 돼지국밥집이다.

“응, 김종길.”

내가 대답했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하고 ‘젊은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이 대비적인 표현이 맞죠?”

뜬금없이 물었다. 무슨 대비? 관념? 이미지? 그것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아버지의 사랑에 기대는 어린 아들(어미의 보호 없이는 존재하기 힘든 어린 생명체?)에 대한 비유이고 사랑으로 헌신하던 아버지에 대한 감각적 이미지로 된 기억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왜 대비적인 표현이 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하나는 은유고 하나는 직설(直說)인데... 아들(사랑을 받는 존재)/아버지(사랑을 주는 존재), 그렇게 나뉘는 건 당연한 거고, 대비가 있다면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에 부비는 나의 ‘열로 상기한 볼’의 ‘서늘한/상기한’이라는 온도 감각 정도인데 그게 무슨 또 의미있는 대비라고, 요즘은 학교에서 시를 그렇게 가르치는가? 뭐 그런 식인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 없어 하자 아이가 얼른 말꼬리를 잘랐다.

“몰라요.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던 것 같아서요.” 영 자신이 서지 않는다는 투였다.

아이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었다. 시란 것이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에는(?) 좀 무거운 장난감이잖는가? 아마 어디선가 혼선이 왔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자기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을 내게 확인해 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런 것 같았다. 아이가 복잡한 이야기를 피하려는 듯, 얼른 국밥을 한술 떴다.

지난 여름 방학 때 아이에게 김종길의 「성탄제」를 읽기 과제로 준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명색이 국어 선생인데 아들이 국어 성적이 잘 안 나온다는 게 말이 되는가(집안의 실세께서 그렇게 타박을 줬다), 해서 방학 중에 면피용 ‘읽기 훈련’을 잠깐 시킨 적이 있었다. 시나 소설을 주고 읽게 한 후 가볍게 몇 마디 물어보는 것 정도였다. 그 때 준 것이었는데, 아마 최근에 그 시를 학교에서 배운 모양이었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옛것이라고는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 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김종길, 「성탄제」 중에서)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 서느런 옷자락, 옛것, 성탄제, 반가운 옛날의 것, 서러운 서른 살 등등 함축적 의미로 읽을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왜 하필 시어의 대비 같은 것에 연연하는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 말을 해 줄까 말까 하고 있는데 아이가 돌연 내 향학열(?)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런데요, 선생님 설명이 좀 시시해요.”

“뭐가?”

“그냥 그래요.”

아이가 또 말끝을 흐렸다.

그래? 여기서 더 아는 체를 했다가는 좋지 않겠다 싶었다. 예전에 『19세』를 나누어주고 읽으라던 선생님과는 많이 다른 모양이다. 꼭 그렇게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성탄제」라는 시가 아직 젊은 여선생님이 ‘몸으로 읽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시일 수도 있고, 그런 시가 또 선생님의 취향이 아닐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성탄제」는 ‘아버지와 아들’간의 사랑, 이를테면 ‘부계(父系)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몸으로 전달되는’ 어머니와의 사랑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아버지와의 사랑이었다.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 불현 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이라고 시인이 말한 것은, ‘아버지의 사랑’, 그것이 하늘에서 내리는 것임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을, 아들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 젊은 여선생님이 어떻게 알겠느냐고, 그렇게라도 말해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알던 날이 자신에게는 성탄제였다고 이 세상의 모든 아들을 대표해 시인이 그렇게 말했다고 비슷한 이야기를 전번에 한 번 해 준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어차피 살면서 누구를 만나든 그건 아이 몫이었다. 자기가 알아나가는 게 중요하지, 공연히 옆에서 바람을 잡아 쓸데없는 불신감만 키우는 것은 백해무익한 일이었다. 그것 역시 살면서 만나는 ‘그냥 그런 것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확대 해석도 지나친 집중도 모두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묵묵히 나도 입으로 국밥을 퍼날랐다. 지난 여름 읽기 연습 때 ‘성탄제’가 왜 제목이 되었는지를 아이가 조금씩 깨쳐나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표정이 자못 볼만했다. 처음에는 못 알아듣고 멀뚱멀뚱하다가, 시인이 시를 쓸 당시 우리동네에서 거주했었다는 걸 듣고 나서, 첫눈인가가 내리는데, 이마에 내리는 그 서늘한 느낌에서 어릴 때 열병을 앓던 어린 자식을 위해 눈 쌓인 산길을 헤치고(시인이 살던 고향은 첩첩산중 두메산골이었다), 십리 안이 오리무중, 밤새 산길을 걸어 산수유 열매를 따왔던 아버지의 그 서늘한 옷자락이 연상되었다는 것, 성탄제는 참된 ‘사랑’을 이 땅에 구현한 구세주를 기념하는 날인데, 시인에게는 바로 그 날이, 눈 내리는 날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몸에 내린 감각으로 알게 된 날이 성탄제였다는 것, 인간이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제목이 성탄제라는 것, 아마 아이에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마 그때, 아이가 ‘시의 언어’가 지닌 가공할만한(?) 힘에 대해서 많이 놀랐던 것 같다.

인간에게 시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언젠가 TV 프로 에서 조영남이 선배 화가 김종학을 만났다. 조영남이 끝물에 이렇게 말했다. 후배들한테 한 말씀 남기셔야죠. 화가가 말했다. 시인이나 화가는 만 명 중에 하나 날까 말까 하잖아요? 그냥 하는 대로 열심히 하다 보면 한 오십쯤 되어서 뭔가 하나 만들어낼 수 있을 거니까, 그냥 열심히들 해야지 뭐... 과연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 말이 곧 시(詩)였다. 그는 또 시인이나 화가는 ‘100년 안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적어도 ‘500년 안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도 했다. 화가가 말도 참 잘한다 싶었다. 그걸 보면서 시인인 친구들이 생각났다. 남녀 불문, 다 좋은 친구들이다. 이제 모두 ‘한 오십’ 줄에 들었다. 개중에는 ‘열심히 해서 뭔가 하나 만들어내는’ 친구도 있다. 그 친구는 요즘 들어 이것저것 상도 많이 받는다. 나머지는 고만고만이다. 그치들, 500년 동안 뭐하다 이제 나타나서 그런 말뿐인 자비를 베푸는지, 하필 그런 궁상을 떠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