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잡이/양선규-문학개론

감언이설(甘言利說)⑧

은빛강 2012. 4. 17. 01:32

인문학 스프 - 時俗
감언이설(甘言利說)⑧ - 어진영의 유물

천황의 초상 사진은 이미 메이지 초년부터 측근의 정치가나 고급 관료, 그리고 지방관청에 내려 보내졌는데, 메이지 23년(1890)에는 그 내려 보내는 범위가 고등 소학교에까지 미치고, 전국을 망라하는 행정조직, 군대, 교육시설까지 배치된다. 결국 이 시기에 ‘어진영’은 정사(政事)가 행해지는 전국의 공공 공간에 두루 편재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것은 가시화의 측면에서 볼 때, 천황의 몸이 직접 물리적으로 공간을 이동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순행의 효과를 훨씬 능가한다. 더욱이 ‘어진영’은 사진을 바탕으로 근대국가의 원수에 걸맞게 그려진 초상화를 촬영한 것이므로, 대량으로 복제되고 두루 존재하는 ‘어진영’은 원본성(original)이 결여된... 시뮬라크르(simularcre : 模像)로 유통되면서 천황의 이미지를 창조해 냈다. 이제 모상이 거꾸로 현실의 천황을 규정하는 전도가 발생한 것이다.
‘어진영’이 사진이었다는 점은 사람들이 그것을 주물적(呪物的)으로 취급했던 것과도 본질적으로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회화를 촬영한 것이긴 해도 기본적으로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초상은 극히 사실적이었다. 초상을 장식하는 풍습이 본래 존재하지 않는데다가 리얼리스틱한 인물의 표상(사진 ․ 회화 등)을 이제 막 접하게 된 메이지의 민중들에게 있어서 의례장에 걸린 리얼한 초상은 틀림없이 천황의 존재감을 강하게 각인시켰을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 초상 사진은 사자(死者, 특히 가족)의 초상이자 표상, 그리고 대리로서 영전(靈前), 불전(佛前) 등에 장식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볼 때 일본에서 초상 사진은 조상신앙과 깊이 결부되면서 수용된 측면이 있다. 메이지 시기의 근대 천황제가 조상신앙과 결부됨으로써 확립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어진영’이 주물화된 데에는 ‘어진영’이 ‘만세일계’의 조상으로 인식된 메이지 천황의 초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초상 사진 자체가 이미 조상신앙을 통해 ‘성스러운 존재’를 표상 즉 대리하는 것으로 수용되었다는 점도 크게 관련되어 있었다. [이효덕(박성관 역), 『표상 공간의 근대』 중에서]

본인을 ‘대신하는 것’ 중에서 이름에 필적하는 것이 초상화나 얼굴 사진입니다. 얼마 전에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났습니다. 우리나라 관공서 풍습 중에 역대 기관장 얼굴들을 회의실 같은 곳에 남기는 게 있는데, 그 얼굴들을 초상화로 남기는 급이 있고 사진으로 남기는 급이 있답니다. 3부 요인급은 초상화, 그 나머지는 사진이었는데, 이번에 역대 검찰총장 얼굴들이 사진에서 초상화로 자작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일국의 검사들이 팔자에 없는 그림 액자들을 들고 왔다 갔다, 전관(前官)님들 자택으로 그림 품평을 받는 일로 오졸없이 바빴다는 가십성 기사였습니다.
공(公)조직에서 물러난 전관의 얼굴을 회의실 같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게시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족 사진이 아닌 이상, 제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그런 ‘기념’은 일반적으로(불특정 다수의) ‘존경의 염(念)’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나 국가적 위인을 기릴 때 우리는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특정 관공서마다 물러난 기관장의 초상화를 그렇게 나 보라는 듯이 게시하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그 조직 구성원들의, 혈연적인 유대감에 방불하는, 일종의 연대의식을 고취하는 효과를 의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좀 특수한 ‘기념’인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남이가?’라는 동류의식을 강조(강요?)하는 표상이 될 공산이 큰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회의실에 들어가서 그런 사진들을 볼 때마다 그런 느낌을 받거든요. 조직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게시할 사진도 늘어나서 두 줄로 걸려있는 그것들을 보면서, 끝이 좋았던 분도 있고 끝이 안 좋았던 분도 있는 그 도열을 보면서, 때로 만감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차라리 그런 ‘얼굴’들이 없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자주 듭니다. 잊어야(버려야) 할 역사적 유산이 그런 식으로, 시간을 거슬러, 우리 앞에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어색할 때도 있다는 겁니다. 마치 그때마다 자신을 인정해 주기를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해서 속이 거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강요적 표상’을, 아마 일제(日帝)의 잔재인 듯한데, 구태여 사진에서 그림으로 교체한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요? 그 조직의 생리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가타부타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뒤에서 설명이 되겠습니다만, 초상화의 주술성과 관련된 ‘사진 초상의 시선 되포착 현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변화입니다. 명망 있는 화가에게 의뢰해서 비싼 값으로 이미 ‘옷 벗은 자들’의 얼굴을(그 얼굴들이 ‘일반적인 존경의 염’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그린다는 게 혹시 그 조직이 당면한 어떤 위기감을 반영하는 ‘미숙한 방어기제’ 중의 하나는 아닐까라는 생각만 듭니다. 좋지 않은 생각이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늙은 기생일수록 화장도 더 진해지는 법이니까요. 일반적으로 ‘그림’과 ‘사진’이 가격차가 있는 것은 ‘그림’ 쪽이 보다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굴을 사진보다는 초상화로 남기는 것이 더 좋아보이는 것도 그 비슷한 이유에서일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지닌 ‘가격’ 때문일 것입니다. 비싼 액자 안에 들어가 있는 얼굴이 더 가격이 나가 보일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진짜 얼굴에서는 찾기 어려운 어떤 ‘위엄’이나 ‘자비’를, 사진으로는 보태기 어려운 그것을, 얼굴에 그려 넣고 싶은 마음도 한 몫 거들지 싶습니다. 만약 그런 의도가 개입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건 ‘회의실 비치용 전관 사진’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것을 넘본 결과입니다. 그건 이른바 어진영(御眞影)이나 취할 ‘명분’이기 때문입니다. 시속(時俗)에 관한 말이 좀 길어졌습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공부로 들어가겠습니다. 사진 초상의 주술적 의미입니다.

어진영(御眞影) 같은 정치적 표상물이 추구하는 ‘사진(초상)의 현전성(現前性)’ 문제도 결과적으로는 공감 주술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름과 얼굴 사진은 여러 부문에서 대체재(代替財)의 관계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제사상 위에 지방을 써서 신위를 모실 수도 있고 조상님의 사진을 올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또, 자신의 존재 증명이 필요한 특정한 곳에 들어갈 때 우리는 명찰을 달 수도 있고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패찰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집 주인처럼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자는 그런 절차를 취할 필요가 없겠지요. 만약 객 중에서 자신을 증명할 패찰을 차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그 집의 전 주인이었거나, 앞으로 조만간에 그 집 주인이 될 사람이거나일 것입니다. 자타공인, 증명이 따로 필요 없는 인물이라는 인정을 받을 때만 명찰이나 사진이 필요 없습니다. 어쨌거나, 인간을 증명하는 것은 그 종국에 가면 이름과 얼굴뿐입니다.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자연의 힘 앞에서나 신 앞에서니, 아니면 다중 앞에서도, 결국 마지막에는 그것들만이 인간을 증거할 뿐입니다. 그만큼 이름이나 얼굴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름과 얼굴은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켜갈 수도 있는 불운도 이름을 잘못 노출시키면 자신을 향하게 할 수도 있다는 공포는 오래된 ‘인간의 불안’이었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시대의 어진영에서도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절대 권력자의 얼굴(초상)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그의 시선 안에 갇힐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오래된 ‘인간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사회화’의 일환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공포(금기)에 적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사회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단의 입장에서도 개인의 충동을 제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기제가 공포(처벌에 대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름과 얼굴’로 공포를 대상화하는 손쉬운 방법을 포기하기 어렵습니다. 사진 초상의 ‘되응시성’이라는 메커니즘은 그러한 사진의 정치성을 잘 나타내는 사례가 됩니다.

‘어진영’이 사진이라는 사실에서 더욱 중요한 점은, 리얼한 초상 사진이 보는 사람에게 이상한 시선의 감각을 부여한다는 사실이다. 초상 사진을 보다 보면, 보는 사람의 시선이 초상 사진의 시선 속으로 어느새 흡수되어 그에 의해 되포착되는 경우가 있다. 응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진 속의 초상에게 응시당하고 있다는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응시하는 방향은 역전되어 초상 사진의 시선은 초상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사람을 개별적으로 되포착하게 된다. 결국 어떤 지점에서 어떤 식으로 어떤 사람이, 혹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본다 해도 초상 사진의 시선은 보는 사람을 개별적으로 되응시하는 것이다. 그때 ‘본다’는 적극적 행위는 ‘보여진다’는 수동적인 행위 속으로 반전되고 회수되어 버린다. 물론 회화의 초상도 그런 시선을 구성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진이 가지는 시선의 효과는 피사체가 대단히 리얼하기 때문에 바로 그만큼 초상화보다 강하게 작동한다. [이효덕(박성관 역), 『표상 공간의 근대』 중에서]

그런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집단 심리 문제가 아니더라도, 시뮬라크르는 본디 힘이 셉니다. 그것들은 항상 원본을 압도하는 힘을 가집니다. 원본을 압도하는 힘이 없으면 이미 그것은 진정한 모상(模像)이 아닙니다. 사진과 다르면 ‘천황’이 아닙니다. 이름이나 얼굴 사진이 본체를 압도할 만한 어떤 힘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서두의 인용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가시화의 측면에서 볼 때, 실재로서의 몸이 직접 물리적으로 공간을 이동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왕의 巡幸)와 당사자의 시뮬라크르가 지닌 힘은 비교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순행의 공간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그러나, 대량으로 복제되고 두루 존재하는 ‘어진영’은 그 시선의 되응시성으로 인해, 절대적이고 부재인 원본성(original)을 현전하는 것으로 만들어냅니다. 이제 모상이 거꾸로 현실의 본체를 규정하는 전도(顚倒)가 발생합니다. 그것, 모상(模像)과 같지 않으면 오히려 본체가 아닌 것이 됩니다. 인용문에서 다루고 있는 일본의 근대화는 천황제에 입헌군주제의 너울을 덮어씌운 그도 저도 아닌 정체(政體) 위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메이지 천황의 사진은 순행(巡行)의 불편함과 한계를 일거에 해소하는 시뮬라크르의 힘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총선과 대선을 한 해에 치르는 변화의 시기에, 각 정당들이 앞다투어 자신을 ‘대신하는 것’들을 새로이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주로 ‘이름’과 ‘얼굴’에 관한 것들입니다. 이름에 ‘새’나 ‘통합’이 들어가고 공감적인 ‘얼굴’이 많이 기용됩니다. 상징물이든 공천자든, 조금이라도 유리한 이름과 얼굴을 갖기 위해 모두 절치부심하는 느낌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주술은 대체로 역기능으로 작용합니다. 현실을 호도하고, 자신을 ‘자신 아닌 것’으로 채우는 데 그것이 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정치에도 주술이 너무 작용하면 어쩔 수 없이 역기능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사회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삶에는 여전히 불안과 공포가 내재합니다. 정치가 지닌 기능 중 하나는 그런 불안과 공포의 해소에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주술도 그런 의미에서, 잘만 사용된다면, 그것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시의적절한 위안을 줄 수도 있습니다. 흔히, 스포츠나 문화예술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징크스나 금기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주술의 힘이 실현된다는 것을 믿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그것에 의지해서 불안과 의구심을 잠재운다는 것이 고도의 집중력과 자기 믿음이 필요한 그들에게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그것처럼, 우리 사회의 정치의식도 ‘고도의 집중력과 자기 믿음’을 위해서라면, 그럴듯한 주술 하나쯤은 가져도 좋을 듯합니다.
중언부언이지만, 주술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결정적 원인은 인간의 정치의식이 늘 그것을 불러내기 때문입니다. 봉건제, 군주제, 민주제 할 것 없이 동서고금의 통치자들은 늘 사제의 역할을 겸해 왔습니다. 당연히, 대중들의 집단의식의 저변에는 그들 사제들에 대한 주술적인 믿음이 항존해 왔습니다. 재해는 늘 사제의 질병이나 노쇠나 무능이나 실책으로 인한 것이었으므로, 노쇠와 질병과 실책의 징후가 보이는 사제는 가차없이 살해되고(아니면 자살이 강요되고) 활기가 넘치는 새로운 사제로 대체됩니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보는 선거 민주제라는 정체(政體)를 통해서도 면면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언제고 확연히 드러나는 인간의 정치의식입니다. 그 ‘정치의식’, 그 주술이 우리 사회를 다시 한 번 쇄신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