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詩하늘 詩편지

돛-유배시편2 -정 숙

은빛강 2012. 5. 1. 09:31

-유배시편2

정 숙

살얼음이 칼바람 물고 달려드는 밤

서울역 지하도에 웅크린 사람들

세상사 뭐든지 꿰매고 깁던 버릇 버리지 못해

긴장된 순간들을 모아 시간 조각보 박음질하네

가슴 속 낡은 생의 미싱 바퀴를 돌리고 있네

침침한 바늘귀에 실 꿰어

지친 손가락 마디 호고 감치네

끝내 바늘귀를 찾지 못하고

헛바퀴만 몇 바퀴 드르륵 돌리다가

무연히 드러눕는 사람들

찬 바닥 신문지 몇 장 깔고 누워

허공으로 둥둥 지상의 가족을 내려다보네

미안하다, 사랑한다, 틀 바늘은

간간이 헛소리 하는 제 주인의 꿈 깨우지만

드르렁, 컹, 컹 코고는 소리만

지하도의 밤 울리며 지나가네

속절없이 무너진 가슴 속 세상을 돌리며

길을 묻는 재봉틀 헛바퀴 소리

그 신음 속 밤의 폐부를 가르는 바람소리

부러진 돛대 지키느라 너덜너덜 헤진

저 돛, 누가 촘촘히 박음질해 이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