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詩하늘 詩편지

詩하늘

은빛강 2012. 6. 11. 08:47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오정국

매미가 허물을 벗는, 점액질의 시간을 빠져나오는, 서서히 몸 하나를 버리고, 몸 하나를 얻는, 살갗이 찢어지고 벗겨지는 순간, 그 날개에 번갯불의 섬광이 새겨지고, 개망초의 꽃무늬가 내려앉고, 생살 긁히듯 뜯기듯, 끈끈하고 미끄럽게, 몸이 몸을 뚫고 나와, 몸 하나를 지우고 몸 하나를 살려내는, 발소리도 죽이고 숨소리도 죽이는, 여기에 고요히 내 숨결을 얹어 보는, 난생처음 두 눈 뜨고,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시집『파묻힌 얼굴』(민음사, 2011)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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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의 탄생과

그 과정에 내 숨결을 얹어 본다는

시인의 독백은

나를 덮쳐 오는 그 무엇에

나를 개방하고 그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숨 막히는 참음, 견딤의 시간이다

이 시에서 점입가경의 이미지를 드러내면서

거기에로 함께 몰두하게 하는 마력이 숨어 있다

매미의 탄생이란 우리에게 있어서는

한 마디로 낯선 풍경이고

그것이 언제 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낯선 풍경을 정겹게 하기 위해

시인이 각고의 노력으로 펼친

이 한 편의 시의 표현들에

우리는 왜 몰두하게 되는가?

詩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