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방/오늘의 생각

믿음 - 박찬현

은빛강 2017. 7. 5. 03:52

 

[믿음]

 

신을 섬기는 일로 서로의 숭배사상이 상이한 관계로

갈등에서 시작해 서로 죽고 죽이는 역사를 다룬

세상사가 실화나 소설 또는 영화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부활)이란 영화 역시 종교갈등의 주제인데,

내용은 야훼를 섬기는 유대인과

다중 신을 숭배하는 로마인들의 마찰을 계기로 로마군은

자신의 국가의 평화와 질서를 정비하고자 무기로 인명을

살상한다.

주인공 호민관은 그런 전쟁터를 누비다가 총독의 관저로

돌아 오던 날,

유대인들이 재판에 넘긴 메시아라는 나자렛 사람을 처형했으며,

그가 사흘 뒤 되살아 날 것이라는 가야파 대사제의 말과

그 시체를 그의 추종자들이 훔쳐가지 못하도록 무덤을 봉인하고

보초를 서게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총독은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게 하였으나

봉인줄이 터진채 무덤 동굴은 시신을 감싼 천만

남아 있을 뿐 동굴 무덤을 막은 돌은 옆으로 굴려진 것도 아니고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빌라도는 왕이 사찰을 오기 전에 없어진 시신을 찾으라는

명을 내렸고, 호민관은 삼일이 지나면 시신이 썩어서 식별할 수

없기에 그전에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이 영화의 주안점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대기 중 한 부분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야파와 유대인과 로마인들은 나자렛 사람의 부활을 전혀

믿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일이 있을 수도 없는 일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며 신비를 체험한 제자들과

공관 기록으로 남은 복음서처럼 그 시대 직접 눈으로 보고

병을 치유 받거나 부활한 지구상 단 하나 뿐인 신비를

그들은 보고 겪었으면서 정작 피부에 와 닿는 기쁨,

희망, 주어진 시간의 감사함 등이 결여 되어 있어 보였다.

마침 그리스도 승천 장면 즈음에는 갈릴래아서 제자들에게

특히 베드로에게 천상 수위권을 주었으며,

그들에게 보지않고도 믿는자는 과연 복되다. 하였는데,

그곳 갈릴레아 주변에 진복팔단 기념 성당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 현장이 생생한 당시에도 믿지 않는 이들과

복음을 전파하다 순교한 제자들,

시공간을 지나 온 지금 역시 세상은 사실 혼란스럽기는

매 한가지이다.

게다가 단일교를 만든다며 죄 없는 인명살상을

눈을 뜨면 저지르고 있는 종교(※수니파IS무장단체).

과학이 촌각을 다투며 발전하는데도

이빨을 드러낸 짐승들이 좀 많지 않은가,

그 과학 덕분에 "그리스도는 신비다"라고 증명 된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인간에게는 예리한 촉수가 타 생명체보다 좀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신비체에서 나눔을 받은 은총이다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예단을 한다고들 하지만 그것과는 사뭇 다른

신비로움,

아무튼 인간을 지으신 하느님을 믿고 공경하는 생명체들은

솔직히 믿음 하나로 오늘과 미래를 살아가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 가면서 온갖 험난의 고비를 넘고

육신은 노쇠해 가지만 영혼은 많은 수양을 겸양하기에

옳고 그름의 판단의 폭이 넓어지고 예리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곧 죄에 대한 양심을 가지는 것이고

그로 인해 겸손을 알게 되어가는 인생의 깊은 맛이고

멋이며, 고로 믿음으로 가까이 다가서는 보폭이기도 하다.

 

상당히 짧은 단어인 이 '믿음'은

양심의 집결체이고 겸손의 근본이기에

짧은 단어가 되기 위해 많고 많은 제련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께서는 2천년 전에 부활 하시어

늘상 당신 사랑하는 자녀들 곁을 함께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굳이 믿어야 하며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무슬림(이슬람을 믿는 종교)의 수니파의 급진 무장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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