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종이강에 그린 詩

[제23호 종이강에 그린 詩]싸리재를 넘으며/등나무집-양문규

은빛강 2010. 8. 15. 07:36

[제23호 종이강에 그린 詩]

 

싸리재를 넘으며

양문규

 

때늦은 눈발 남대천을 지나

싸리재, 싸리재를 넘으면서

가뿐 숨 급히 휘몰아 쉬다 멈춘다

앙상한 나무가지엔

눈발들이 빙산氷山을 오르는

산인들의 발자국들이 반짝인다

내게도 저렇듯 아름다운 삶의 발자국들이 반짝인다

내게도 저렇듯 아름다운 삶의

발자국들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땀흘리며 올라왔던 길들이 바람 길을 열 듯

마지막 꽃 피울 때가 있을까

때늦은 눈발 남대천을 지나

싸리재, 싸지재를 넘으면서

넋불 지피고

세상 밖으로 저렇게 멀리 사라지고 있으니

 

 

 

 

 

등나무집

양문규

 

등이 굽은 나무 여럿 산다

모가지가 짧아서 까치발로 하늘을 쳐다보는 등나무

다리가 길어서 세상 굽어보는 등나무

키다리 난쟁이 반곱추 언청이 한 집 모여 산다

얽히고 설킨 등나무들이

서로 등을 기대고 몸 비벼 감싸면서

잎새들을 피우고 꽃들을 단다

등나무 집이 아름다운 것은

등꽃들이 수없이 하늘을 떠받치고

우리들의 사람살이 드러내지 않으며

환하게 감싸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와상상 2001년 하반기/백지36호]에서 발췌

 

양문규 연보

-충북영동출생

-청주대 및 명지대 대학원

-1989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

-벙어리 연가, 외 다수

*명지대 강사 역임/ 대전대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