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지상에서의 며칠
나태주
때 절은 종이 창문 흐릿한 달빛 한 줌이었다가 바람 부는 들판의 키 큰 미루나무 잔가지 흔드는 바람이었다가 차마 소낙비일 수 있었을까? 겨우 옷자락이나 머리칼 적시는 이슬비였다가 기약 없이 찾아든 바닷가 민박집 문지방까지 밀려와 칭얼대는 파도 소리였다가 누군들 안 그러랴 잠시 머물고 떠나는 지상에서의 며칠, 이런 저런 일들 좋았노라 슬펐노라 고달팠노라 그대 만나 잠시 가슴 부풀고 설레었지 그리고는 오래고 긴 적막과 애달픔과 기다림이 거기 있었지 가는 여름 새끼손톱에 어른대는 첫눈이었다가 눈물이 고여서였을까? 눈썹 깜짝이다가 눈썹 두어 번 깜짝이다가…….
-시집『물고기와 만나다』(문학의전당, 2006) -사진 : 다음 이미지 ------------------------------------------------
지상에서의 며칠 우리가 달빛 한 줌, 바람, 이슬비, 파도 소리, 빠알간 물감, 첫눈이였다가 금새 사라진대도 좋았노라 슬펐노라 고달팠노라 외칠 수 있었던 그 며칠이 행복이었지 않았을까 오래고 긴 적막과 애달픔과 기다림이 거기 있었지만 그 모든 것, 눈썹 한 번 깜짝이면 사라질 것이거늘
우리가 사는 동안인 지상의 며칠은 적어도 100년 미만인 것이나 우주의 시간으로 치면 찰나인 것을
지상의 며칠은 우리가 겪는 작은 행복의 순간들이 아니겠는가 나답게 살아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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