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방/詩 마당

흐린 기억 하나

은빛강 2009. 7. 21. 02:25

 

                                                                        사진:배봉균 작가님 

흐린 기억 하나

                                                       설록 박 찬 현

 

초록 햇살이 일렁이며

폐부 깊숙이 들어앉는 보리 알갱이 내음

뻐꾹새 울음이 내 머릿결에 둥지 틀고

미루나무 잎사귀 부비며

초록 바람은 하늘 높이 발 돋음 쳐 오르는 한낮

 

유년의 살뜰한 기억들이 균형 맞추어

저 보리밭에서 걸어오고

미루나무 허리쯤에서 너머보이는 나의 집

갑자기 목마름에 초록 햇살 마시며

아릿한 그리움 삼킨다

 

                                                                            사진:배봉균 작가님 

유년의 저 숲에는

먼지 일어나는 신작로를 따라

벼 베기를 지원 나갔다

서투른 작업은 상처를 만들고

지쳐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어 고개를 들어 보면

어김없이 미루나무는 푸른 바람 속에 꿋꿋이 서있었고

길을 안내하던 이정표였다

그 허리 중간 어디엔가 나의 집이 보일것 같았고

어쩌다 눈에 뜨인 외딴 집 우물

힘들게 길어 올린 두레박 물은

발 끝까지 시원함을 꼭꼭 채워주었던 

그 지친 시간들 곁으로

더러 꿈속에서 걸어 간다

그렇게 보리밭은 

흐릿하게 지쳤으면서도 뼈 속 까지 젓어 오는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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