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배봉균 작가님
흐린 기억 하나
설록 박 찬 현
초록 햇살이 일렁이며
폐부 깊숙이 들어앉는 보리 알갱이 내음
뻐꾹새 울음이 내 머릿결에 둥지 틀고
미루나무 잎사귀 부비며
초록 바람은 하늘 높이 발 돋음 쳐 오르는 한낮
유년의 살뜰한 기억들이 균형 맞추어
저 보리밭에서 걸어오고
미루나무 허리쯤에서 너머보이는 나의 집
갑자기 목마름에 초록 햇살 마시며
아릿한 그리움 삼킨다
사진:배봉균 작가님
유년의 저 숲에는
먼지 일어나는 신작로를 따라
벼 베기를 지원 나갔다
서투른 작업은 상처를 만들고
지쳐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어 고개를 들어 보면
어김없이 미루나무는 푸른 바람 속에 꿋꿋이 서있었고
길을 안내하던 이정표였다
그 허리 중간 어디엔가 나의 집이 보일것 같았고
어쩌다 눈에 뜨인 외딴 집 우물
힘들게 길어 올린 두레박 물은
발 끝까지 시원함을 꼭꼭 채워주었던
그 지친 시간들 곁으로
더러 꿈속에서 걸어 간다
그렇게 보리밭은
흐릿하게 지쳤으면서도 뼈 속 까지 젓어 오는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