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을 창가에두고/종이강에 그린 詩 111

[제98호 종이강에 그린 詩]-도시의 경계선-박 찬 현

[제98호 종이강에 그린 詩] 도시의 경계선 박 찬 현 피곤한 노을이 차가운 빌딩 숲 속으로 눕고 어둠이 경계선을 그은 곳에 자동차들 눈망울 반짝이며 굴러 가는 시간 좁은 어깨를 나란히 맞추어 앉은 골목 취기가 발목 잡으려 기를 쓰는 너머 노랑 은행잎 비가 되어 내리며 흔들리는 취객을 깨운다 주..

[제97호 종이강에 그린 詩]-우리 기쁜 절벽 -- 서규정

[제97호 종이강에 그린 詩] 우리 기쁜 절벽 -- 서규정 서둘러 가는 것은 길이 아니라 도착이었다. 길가에 나온 사람들은 먼지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끝이 없는 길 잘 가라고 인사는 건넸다. 어디선가 직각으로 꺾일 것 같은 길 위에서 무엇인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불고 덮였다. 꽃들이 ..

[제96호 종이강에 그린 詩]-귀신이 밥을 하고 있다--이동재

[제96호 종이강에 그린 詩] 귀신이 밥을 하고 있다 -이동재 어머니가 집을 비운 며칠 날마다 그냥 입으로 들어가던 밥이 걱정이었다 그런 새벽이었을 거다 스르르 스르르 부엌에서 소리가 난다 얼마 후 뿌뿌 김을 내뿜는 소리도 나고 밥 냄새도 난다 부엌엔 엄마가 없다 우렁각시도 없다 바쁜 아내는 아..

[제 95호 종이강에 그린 詩]-창 밖, 한 아이--배용제

[제 95호 종이강에 그린 詩]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가고 오고 바람이 불고 바닷물이 넘치고 하늘이 푸르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이 모든 것을 한 눈에 보는 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 눈 앞에 너무 오래 노출된 먼지처럼 잦아드는 저 먼 아이, 창 밖, 한 아이 -배용제 가방을 맨 한 아이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제 94호 종이강에 그린 詩]-서울을 버린 사랑--박상률

[제 94호 종이강에 그린 詩] 거친 소의 혓바닥을 만지는 것 같은 막 동틀 무렵의 안개 아직 걷히지 않은 여름 벌판 같은 그런 한 편(!?), 어쩌면 안개에 묻혀 할딱할딱 나부끼고 있을 협동농장의 깃발(^;^)을 덤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대 아니라고 하는 사람 한테는 아니겠지만요. 서울을 버..

[제93호 종이강에 그린 詩]- 각시붓꽃--돈연

[제93호 종이강에 그린 詩]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는 안다. 그러나 무엇이 될런지는 모른다. ---셰익스피어 각시붓꽃 --돈연 오월 기다리던 붓꽃이 올라왔다 날카로운 칼끝 세우고 당당하다. 며칠 지나면 헤벌어져 피겠지 후비는 마음 간 데 없고 슬프다. 늘상 다짐했던 마음은 어디로 가버리고 바람불..

[제92호 종이강에 그린 詩]-흉터 -문군자

[제92호 종이강에 그린 詩] 흉터 -문군자 새벽 모퉁이에 아침 이슬처럼 사라진 가라앉는 끝자락 휘감아 돌라 빗장 풀면 몸 비벼간 사람의 울음소리 밤새 지우려 두드리는 고통의 다듬이 소리 상한 마른 나무 끝에 매달린 잎새 하나 삶 모습 짓이긴 무너져 내리는 서슬 퍼런 목숨 아픈 상처 도려내는 칼..

[제 90호 종이강에 그린 詩]-아버지의 가을-박찬현

[제 90호 종이강에 그린 詩] 아버지의 가을 박 찬 현 쓰다 달다는 말없이 삶의 늪을 질퍽질퍽 건너 간 여정 곱게 노을 진 낙엽으로 내려앉은 아버지 지금 도심에 노을 잎 천지 단풍잎 하나 주워 든 오늘은 심장박동이 역시나 멎은 날 붉디붉은 강줄기만 흐를 뿐 찬바람만 일고 하늘 공간 속으로 띄운 낙..

[제 89호 종이강에 그린 詩]-비린 글씨 -송 종 규

[제 89호 종이강에 그린 詩] 비린 글씨 --송 종 규 야야, 밥은 먹었나? 밥통 같은 엄마 식빵 같은 우리 엄마 팔십 다섯 마른 우물 같은 속까지 다 퍼내주고 아직도 밥 먹었나 야야 많이 먹어래이 툇마루에 둥그렇게 보름달 떠 있다 삐거덕 문이 열리고 언 손, 엄마 치마 속에 묻는다 고봉밥 따뜻하던 우리 ..